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일본의 건축가 구마 겐고와 사회학자 미우라 아쓰시의 대담을 정리한 삼저주의라는 책을 읽었다. 1992년에 번역 소개된 히라시마 야스히사의 감성마케팅에서 받은 놀라움 이후 오랜만에 눈이 밝아지는 느낌이다. 중후장대(重厚長大)에서 단소경박(短小輕薄)을 거쳐 미유윤창(美游潤創)으로 변하는 시장의 요구에 대한 기업의 대응전략은 일본인다운 단순명쾌한 통찰이었다. 이후 그를 모방한 여러 가지 컨셉이 등장했지만 그 범주를 넘지 못한 것 같다. 히라시마가 기업의 입장에서 일반적인 마케팅차원의 접근을 했다면, 구마와 미우라는 주거환경과 조건을 중심으로 한 현대 일본인의 삶을 인문학적 관점으로 논의했다. 

발전과 진보는 자본주의와 결합됐을 때 규모의 성장을 추구한다. 각종 수치의 증가율은 사회발전의 잣대였다. 주거환경도 보다 크고, 높고, 빨라야 한다. 이러한 주거환경의 변화는 소득의 증가와 기술의 발전과 맞물려 중후장대의 추구로 나타난다. 산업의 변화로 도시집중화가 극에 이르자 제한적인 공간에서 중후장대를 실현하려면 높아져야 하고, 심각한 집중화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건설공기의 단축은 물론 활용속도를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대안을 감안해야 한다. 이동속도 때문에 집중도가 높아지고, 도시는 더욱 복잡해진다. 인구밀도가 높아지고 여유시간이 줄면서 스트레스가 가중되면 삶의 가치가 흔들린다. 도심은 물론 사방에 휴식공간이 다양한 형태로 마련되지만 중후장대를 마주하는 사람들은 주눅이 들어 자아실현이라는 존재확인은 요원하다.

중후장대형 중공업과 건설, 단소경박형 정보통신과 전자로 경제를 일으킨 우리는 아직도 양적 성장이 멈추는 것이 두렵다. 일본이 겪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고령화, 독신화, 고실업의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 무엇보다 인구의 역피라미드화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현상이다. 안정된 삶을 기약할 수 없는 것은 젊은이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더 심한 불안이 일선에서 물러난 사람들에게 다가올 것이다. 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은 도전이고 소극적인 대응은 포기이다. 그러나 제3의 길도 있다. 순응이다. 순응은 변화의 추세를 이용한다는 측면에서 도전과 다르고, 적응한다는 측면에서 포기와는 다르다. 성장이 양의 도라면, 축소는 음의 도이다. 건축도 성장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축소에 눈을 돌려야 한다.

축소가 퇴보로 인식되지 않으려면 문화가 뒷받침돼야 한다. 문화의 질적인 표현이 ‘미유운창’이다. ‘미유운창’은 미학적 품격이다. 구마가 추구하는 삼저주의의 핵심은 미유운창의 구현이다. 건설이 인문학과 결합돼야 하는 이유이다. 경쟁보다는 협동과 조화를 통한 인간적 자존감의 회복을 중시하는 문화가 활발할 때 선진사회가 이룩된다. 거대한 구조물은 경쟁을 부추기지만 낮고 작은 구조물은 편안하다. 지방은 인구의 감소로 인해 존폐의 위기에 몰려있다. 어떻게든 회생하려는 몸부림이 치열하다. 우리가 양적인 삶보다 질적인 삶에서 가치를 찾아낼 때 지방이 지닌 자연환경과 인문문화는 훌륭한 자산으로 변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구마는 진보라는 개념에 수축이라는 측면을 포함한다. 만드는 것보다 없애는 것도 건축의 한 형태이다. 

수요가 공급을 결정하지만, 때로는 공급이 수요를 리드하기도 한다. 편의형 북합주거공간화된 도시에서의 삶과 대조적인 분산과 여유공간은 지방이 유리하다, 문제는 그러한 삶을 추구하려고 하는 사람의 마음이다. 도시의 빌딩에서 느낄 수 없는 시각적인 주거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지방마다 독특한 시각적 주거환경을 마련하려면 지방의 문화적 자산부터 재정립해야 한다. 지방의 리모델링은 고유의 문화적 자산을 토대로 ‘미유윤창’을 창조해내는 작업이 돼야 한다. 도시의 편의성과 지방의 여유를 어떻게 차별화하느냐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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