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晩秋)!, 가을은 깊어가고 어느덧 겨울의 문턱에 서 있다. 이른 봄에 밭에 나가 씨를 뿌리는 농부의 마음은 어디에 있었을까. 풍년을 소망하며 잘 익은 곡식과 열매를 거둬 곳간에 들일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이른 아침부터 밭에 나가 씨를 뿌렸을 것이다.

지금 들녘엔 익은 곡식 하나라도, 열매 하나라도 놓칠세라 농부의 애타는 마음이 낫에 실려 분주히 마지막 추수를 하고 있다.

혹여 추숫군이 휘두르는 낫에 미처 걸리지 못해 타작마당으로 옮겨져 오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 섞인 농부의 마음이 다시 한번 느껴지는 풍경이다.

물론 밭 한켠, 농부가 심지 않은 가라지는 그 밭에서 불타 재가 되고 연기가 되어 사라져 가고 있는 광경도 목도할 수 있다. 데려감을 얻는 열매도 있고 밭에서 버림을 당하는 열매도 있으니 이 또한 만물을 지은 조물주의 뜻이런가. 농부가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시작한 한 해 농사는 저 들녘에서 ‘추수(秋收)’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끝나가고 있다. 그리고 한 해 농사를 끝낸 그 밭의 운명도 사명도 마지막을 고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秋收(가을 추, 거둘 수)’라는 한자가 갖는 의미가 왠지 심상찮아 보인다. 파자를 해 보니, 禾(곡물)는 추수돼 가고, 밭에 남아 있는 가라지는 火(불사름)를 당하는 의미가 ‘가을 秋’라는 글자에 역력히 드러나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 속담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만물 속에는 창조주의 경륜이 그대로 담겨 있고 우리로 하여금 알게 했기에 이제는 그 누구도 핑계할 수 없다.

우주 만물을 창조한 창조주는 자기가 창조한 그 만물을 직접운행하고 있다. 즉 “천하에 범사(凡事)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라는 말이 바로 이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그 기한(때)은 언제이고 때가 되어 이룰 목적은 무엇일까. 다시 말해 만물을 창조하고 운행하는 창조주가 이룰 목적은 무엇이고 그 때는 언제일까. 참으로 궁금하다.

흔히 말하기를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라고들 한다. 즉, 눈에 보이는 추수를 통해 보이지 않는 창조주의 높고 위대한 섭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거룩한 추수가 있으니 곧 천하 범사가 기한이 되어 이루는 창조주의 목적이 아니겠는가. 정조 때 문장가 유한준이 ‘지즉위진간’이라 했고, 이는 ‘내가 참으로 깨달아 알 때 비로소 보인다’는 의미니, 오늘날 이 한 때 창조주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이 한 가지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으리라고 한다면 억지일까.

대우주인 만유의 대주재이신 창조주의 목적 즉, ‘참 추수’의 때를 맞아 세상의 곡물과 열매가 아닌 소우주 즉, 사람(人)을 추수하는 만물의 마지막 때가 지금 우리 곁에 홀연히 찾아와 있는 것이다. 때를 분별해야 하는 절대적 이유다.

조선이 낳은 유학자이며 천문가이며 예언가인 격암(格菴) 남사고 선생은 그가 남긴 격암유록이라는 저서를 통해 “천도경전(天道耕田) 무릉도원(武陵桃源) 차거인민(此居人民) 무수려(無愁廬)”라 일찍이 알려왔다. 자전과 공전이라는 천체와 우주의 법칙에 따라 운행하던 태양계는 지금 은하계 ‘물병자리’ 위치를 지나고 있으니 지금의 때야말로 대우주의 가을 즉, 사람을 모아 거두는 추수 때인 것이다. 만추라 하듯, 창조주의 약속한 기한에 따라 찾아온 창조주의 위대한 목적이 이루어지는 우주의 가을이 무르익어 가고 있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추수의 때도 이내 그 마지막 정리에 들어가 있다.

그렇게 추수돼 온 곳이 바로 하늘의 도를 전하는 곳이며, 그 곳이 바로 이 땅에 이루어지는 지상낙원 곧 무릉도원이며 그 곳에 거하는 자들은 근심 염려가 없어지는 곳이라고 했던 것이다.

심판과 구원이라는 인류종말 송구영신(送舊迎新)의 때요 이때는 새로운 하늘이 열려 모든 죽어가는 만물이 새 생명을 얻는 호시절(好時節)이라 했으며, 이 한 날을 만물은 학수고대해 왔던 것이다. 여기서 인류의 종말이라 함은 지구촌의 종말을 뜻함이 아니며, 곧 부패한 정신과 종교가 지배해 온 한 시대가 끝이 나고 ‘천택지인(天擇之人)’이라는 새로운 정신적 지주 곧 지도자를 통해 사람을 추수해 모아 진리로 양육해 거듭난 새사람을 만들어 그들과 더불어 세계평화의 새 시대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홍익(弘益)이라 하듯, 인류를 위한 대의(大義)며, 내가 살 길이라는 점을 분명히 깨달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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