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만리재로 바닥에 서울도보관광 표지가 명시돼 있다. ⓒ천지일보 2018.10.22
서울 용산구 만리재로 바닥에 서울도보관광 표지가 명시돼 있다. ⓒ천지일보 2018.10.22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1900년 경인선과 남대문 정거장이 설치되고, 1925년 경성역이 준공된 후 서울역과 철도는 회현동·중림동·청파동 지역을 서로 가로막는 벽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1970년 급격한 인구증가와 교통난 해결을 위해 서울역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형태의 설계로 서울역 고가도로가 준공됐다. 이후 서울역 고가도로는 지방 도시에서 기차를 타고 상경한 사람들이 서울역에서 대면하게 되는 서울의 첫 얼굴이자, 산업 근대화의 상징적 구조물로 자리 잡았다.

1990년대 말부터 노후화된 서울역 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제기됐다. 이에 따라 자동차 길을 사람이 걷고 싶은 거리로 만들자는 취지로 ‘서울역 7017’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서울역고가와 직접 연결돼 공덕오거리까지 이어지는 만리재로는 조선 세종 때 학자 최만리(崔萬理)가 살았던 데서 유래됐다. 최만리는 1419년(세종 1) 문과에 급제, 홍문관에 들어가 1427년 교리(校理)로서 중시(重試)에서 선발돼 집현부제학(集賢副提學)·강원감사(江原監司)를 지냈다.

[천지일보=백민섭 기자] 폭염이 한풀 꺾인 12일 오후 서울역 부근 ‘서울로 7017’ 도심 속 공원에서 시민들이 풍성한 수목로를 거닐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천지일보 2018.8.12
[천지일보=백민섭 기자] 폭염이 한풀 꺾인 12일 오후 서울역 부근 ‘서울로 7017’ 도심 속 공원에서 시민들이 풍성한 수목로를 거닐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천지일보 2018.8.12

 

1972년 11월 26일 한양천도 578주년 기념일을 맞아 만리재로가 만리로(萬里路)로 명명됐다. 1984년 11월 7일 만리로에서 만리재길로 변경했다가 2010년 다시 만리재길에서 만리재로가 됐다.

만리재로는 1974년에 현재의 규모로 확장돼 도심부 연계 교통의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시는 걷고 싶은 거리 ‘서울로 2017’ 프로젝트에 포함되는 17개 보행길 중 하나인 만리재로(1.5㎞)를 서울역고가 보행길과 함께 걷고 싶은 거리로 탈바꿈하겠다고 야심 차게 발표했다.

산업화시대 만들어진 낡은 고가를 국내 최초 보행자전용길로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된 ‘서울로 7017’의 개장 1주년(5. 20)이 지난 현재 만리재로가 정말 걷고 싶은 거리로 바뀌었는지 알아봤다.

만리재로의 한 골목. ‘걷고 싶은 길’로 만든다는 취지로 개선됐으나 보기엔 일반 골목이다. ⓒ천지일보 2018.10.22
만리재로의 한 골목. ‘걷고 싶은 길’로 만든다는 취지로 개선됐으나 보기엔 일반 골목이다. ⓒ천지일보 2018.10.22

 

◆낙후된 만리재로 보행환경 개선

만리재로 보행로는 좁고 경사진 데다 포장상태가 낙후됐고, 오토바이 등이 무단주차 되는 등 보행환경 개선이 시급한 상태였다. 시는 ‘만리재로 도로 공간 재편 및 보행환경 개선’에 대한 공사를 진행했다. 공사의 주요 내용은 ▲차로 수 정리 및 보도 폭 확대 ▲횡단보도 신설 ▲교차로 신호체계 개선 ▲보도 포장‧조경‧전기 정비 등이다.

핵심적으로 기존에 왕복 4~6차선이 혼재하던 차로를 기본 차로 수가 4차선이 되도록 조정하고, 줄어든 차선만큼 보도 폭을 넓혔다. 낙후된 보도포장은 새롭게 깔고, 보도의 녹지를 확대해 걷고 싶은 보행길을 만들었다. 또, 횡단보도를 신설하고 신호체계를 조정하는 등 교통 환경도 개선했다.

보행환경 개선된 만리재로 도보 위로 오토바이가 가득하다. ⓒ천지일보 2018.10.22
보행환경 개선된 만리재로 도보 위로 오토바이가 가득하다. ⓒ천지일보 2018.10.22

 

◆서울시의 야심 ‘서울로7017 보행특구’

서울시는 산업화시대 만들어진 낡은 고가에서 보행자전용길로 변신한 ‘서울로7017’과 일대를 보행특구로 지정한 이후 실제 보행량이 늘고 상권이 살아났다는 분석 결과를 지난 7월 발표했다. 지난해 4월 지정한 ‘서울로7017 보행특구’는 서울로7017을 포함해 만리동, 회현동 등 1.7㎢의 공간을 말한다.

시가 서울로7017 이용 시민 680명을 대상으로 경관, 편의성, 관광 등의 측면에서 보행특구 사업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9%가 만족했다고 답했다. 특히 보행자 편의증진과 문화 공간 확대에 대한 만족도 부분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시는 발표했다.

다만, 만리재길과 청파로 일부 구간에서는 보행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시는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했다. 주요 가로 17개 노선의 현황 및 문제점을 분석하고, 개별 가로 성격을 고려해 가로 활성화를 위한 보행환경 개선방안을 도출했다”며 “보행특구 내부에서도 특히 중요하다고 판단된 5개 지점에 대하여 추가적인 검토를 통해 보완사업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만리재로의 한 골목. ‘걷고 싶은 길’로 만든다는 취지이지만 개선되면서 생긴 화단에 담배꽁초 등 쓰레기가 그득하다. ⓒ천지일보 2018.10.22
만리재로의 한 골목. ‘걷고 싶은 길’로 만든다는 취지이지만 개선되면서 생긴 화단에 담배꽁초 등 쓰레기가 그득하다. ⓒ천지일보 2018.10.22

 

◆찬반으로 의견 갈리는 시민들

실제로 기자가 서울로에서 이어지는 만리재로를 걸어보니 시의 발표와 달랐다. 많은 차량이 오가는 탓에 매연이 심했고, 도보에는 인근 의류공장의 오토바이들이 가득했다. 심지어 오토바이들이 도보 위를 빠르게 달려 시민이 깜짝 놀라는 모습도 보였다. 공덕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도로를 확장한 것 외에 이전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거리를 이용하는 시민들은 실제로 거리를 걷고 싶어 할까. 의견은 실제로 사는 주민과 관광객 두 부류로 갈렸다. ‘서울로 2017’을 구경 온 김나리(34. 여)씨는 “도심 한가운데에서 나무와 꽃을 볼 수 있는 점이 좋은 것 같다”며 “하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서울로 출입구 인근 거리인 만리재로가 한산해서 놀랐다”고 소감을 말했다.

만리재로에 사는 시민들은 시민들이 보행특구 사업에 절반 이상이 만족했다고 결과에 반감을 보였다. 만리재로에서 30여년 살아온 민나래(가명, 41, 여)씨는 보행특구 만족도에 대해 “시가 말한 대로 상권이 발달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구경할 게 있어야 거리를 걷고 싶을 텐데 이 거리는 볼 게 전혀 없다”며 “도보가 넓어지긴 했으나 흡연자나 술을 마신 노약자들이 거리에 있어 아이 가진 엄마로서 걱정된다. 또 오토바이나 불법 주차된 차들이 도로에서 도보로 올라왔을 뿐 이전과 다를 게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판수(52, 남, 서계동)씨도 “이 거리를 왜 걷고 싶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10여년 동안 여기서 살았는데 10년 전과 크게 변한 건 없다”며 “상권이 발달했다고 하는데 이는 건너편에 생긴 아파트의 상가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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