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겸 동국대 교수 

 

집회와 시위는 민주주의의 실현에 있어서 중요한 기능을 하는 기본권이다.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는 의사소통이 자유롭게 전개돼야 하고 다양하게 여론 형성이 돼야 한다. 집회와 시위는 동일한 의사를 가진 다수의 사람이 모여서 표현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집회와 시위는 다수의 사람이 모여서 의사를 표출하고 행동한다는 점에서 공공의 질서와 다른 사람의 기본권과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집시법은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는 금지한다고 규정해 폭력적이고 위험한 집회나 시위는 보장하지 않고 있다.

다수의 사람이 모인다는 점에서 집회는 일정 장소에서 개최된다는 점에서 충돌 등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거의 없다. 그런데 시위는 다수의 사람이 움직인다는 점에서 집회보다는 위험성이 커진다. 특히 시위대가 신고한 이동 경로로 움직이지 않을 때 공권력과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사전에 어느 정도 차단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차벽이다. 차벽은 2000년대 이후 집회와 시위 때 경찰버스 등을 이용해 일정 도로나 구역을 차단하는 것을 말한다. 차벽은 주로 시위에서 시위대가 사전에 신고한 이동 경로를 이탈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설치된다. 차벽은 2000년대 초 경찰에서 고안한 것이지만 이미 외국에서는 이와 유사한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 시위 때 차벽이 설치되는 경우, 경찰과 시위대 간의 충돌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가 있다.

2000년대 이후 대규모 시위에서 차벽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면서 경찰과 시위대의 직접적인 충돌은 줄어들었다. 그런데 시위과정에서 차벽은 시위대에게는 장애물로 인식돼, 시위대에 의한 차벽 훼손 또는 파괴행위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차벽 그 자체는 시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위헌이나 위법이라 볼 수 없다. 시위의 자유가 국민의 기본권이지만,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를 필요한 경우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했고, 집시법에서는 폭력적인 시위는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위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고 해도, 법이 정한 질서를 유지하지 못하면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시위대가 신고한 이동 경로를 이탈하거나, 법령에 의해 제한된 지역을 통과하려고 한다면 이를 보호할 수는 없다. 차벽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고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봐야 한다. 또한 경찰이 시위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차벽을 설치하는 것은 경찰관 직무집행법상 조치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차벽 설치 그 자체와 관련해 직접적인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없다. 다만 2009년 헌법재판소가 4일 동안 서울광장을 봉쇄한 차벽에 대해 위헌이라고 판단한 적은 있다. 이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차벽이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이 통행할 행동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보아 위헌 결정을 한 것이다. 즉 차벽이 일반 국민이 통행할 수 없을 정도로 설치된다면, 시위의 자유의 침해보다도 통행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이를 보면 시위로 인한 위험성을 차단하기 위한 차벽의 설치는 위헌이 아니지만, 일반 국민이 통행할 수 없도록 차벽을 설치하는 것은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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