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80년대까지만 해도 국사 배울 때 ‘폭동’ 또는 ‘반란’ 사건에 대해 많이 듣고 배웠다. 원인과 과정, 결과를 들려주면서 가르친 게 아니라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대구폭동, 4.3폭동, 여순반란사건이라는 말을 기억할 것이다. 모두 공산당과 남로당이 한 짓이고 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혼란 조성이 목적이라고 가르쳤다. 학생들은 진실이라 믿고 따라 배웠다. 시험을 보기 위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암기에 암기를 거듭했다. 

많은 사료들이 새로이 빛을 보면서 ‘폭동’ 또는 ‘반란’이라는 규정이 잘못됐다는 게 드러났다. 진실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영향 아래 있던 이승만 정권의 의도가 개입된 것이다. 이승만 정권이 정한 보도지침에 따라 언론은 통제됐다. 많은 사람들이 공동의 행동을 통해 무언가 말하고자 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 폭동 또는 반란으로 규정해 버리면 진실이 개입할 공간은 사라진다. 힘을 가진 권력자의 입맛에 맞도록 역사는 짜맞춰진다. 

진실은 의문을 품는 데서 시작된다. 누군가 규정한 대로 받아들이고 누군가의 의도에 맞추어 행동한다면 진실은 숨 쉴 틈이 없다. ‘왜?’라고 묻지 않는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사람이 ‘왜?’라고 묻지 않는 삶을 살면 박제된 삶을 살 수밖에 없듯이 사회와 국가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은 분단국가라는 이유로 당연히 품어야 할 의문을 품어서는 안되는 사회가 됐다. ‘빨갱이’로 찍할까, 무슨 일이 닥칠까 두려워 아무 소리도 못하고 숨죽이며 살았다. 

70년 전 오늘 여수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났다. 삽시간에 전남 동부 일대로 들불처럼 퍼져 나갔다. 그만큼 민심이반이 컸던 것이다. 이승만 정권은 국제공산주의가 개입하고 공산당이 주동한 반란으로 규정했다. 박정희 정권은 남로당이 개입했다고 했다. 오랫동안 ‘여순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해 고군분투해온 주철희 박사에 따르면 ‘반란’으로 말할 만한 근거가 없다. 수도를 장악하거나 권력을 찬탈할 의도도 계획도 없었고 남로당 지시도 없었다고 밝혔다. 

‘반란’이라 규정한 건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들어가 있는 자의적 규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승만 정권은 ‘여순사건’ 직후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정적제거를 통해 강력한 반공체제를 구축하고 장기집권 체제로 들어간다. 

요즘 ‘여순반란’이라 부르는 세력은 거의 없다. 대부분 ‘여순사건’이라 부르는데 정확한 이름이 아니다. ‘사건’엔 가치판단이 빠져 있다. 군인들의 저항 이유와 민중봉기로 전환되게 되는 과정과 양상을 살피지 않는다면, 죄 없는 사람들을 살해한 국가폭력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면 진실에 다가갈 수 없다. 

여수에 주둔한 14연대 산하 1개 대대가 제주도의 ‘저항 세력’을 토벌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거부한 이유는 무엇일까. 군의 임무가 ‘국토방위와 국민의 권리 및 복지 실현’이라면서 동족상잔을 강요하는 명령을 듣지 않겠다고 했다. 동족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행위는 군의 영역을 벗어나는 행위로 봤다. 상부의 지시를 거부한 행동만 떼어서 보면 항명과 저항으로 보일 수 있지만 부당한 명령에 따를 수 없다는 입장만큼은 정당성을 인정해야 한다.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가 난 건 통곡할 일이다. 국민의 생명의 보호를 최상위에 놓아야 하는 국가가 진압을 넘어 잔혹한 토벌작전을 전개한 건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고 죄 없는 민간인들을 살해한 건 용서 받지 못할 대죄다. 제주 4.3항쟁은 진실이 규명돼 가고 있고 명예회복이 상당 부분 진행돼 다행이다. 하지만 ‘여순사건’은 진실에 접근조차 못하고 있고 명예회복은 꿈조차 꿀 수 없는 상황이다. 

사건이 나고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고 한평생 빨갱이의 자식과 가족으로 낙인찍히고 연좌제의 고통 속에서 살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계속 세상을 떠나고 있다. 시간이 없다. 역사 적폐청산의 출발점은 특별법 제정이다. ‘여순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올바르게 성격규정하며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국가배상을 실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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