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역사] 인물 (6)
[사진으로 보는 역사] 인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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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부터 차례대로 덕혜옹주, 고종, 순종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8.10.18
왼쪽에서부터 차례대로 덕혜옹주, 고종, 순종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8.10.18

덕혜옹주, 고종, 순종

고종과 순종, 어린 덕혜옹주가 함께 있는 사진으로 덕혜옹주의 생일을 기념하며 찍었다. 아버지 고종의 뒤로 수줍은 듯 살짝 숨은 모습이 영락없는 어린아이의 모습이다. 덕혜옹주는 고종이 귀인 양씨에게서 환갑 때 얻은 딸인 만큼 “금이야, 옥이야”하며 애지중지했다고 전해진다.

고종과 명성황후에게서 난 순종과 덕혜옹주와의 나이 차이만해도 38살이나 난다. 한편 1897년 고종은 기울어가는 조선을 다시 세우고 땅에 떨어진 나라의 위신을 다시 세우고자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쳐, 조선은 황제국임을 대내외에 알렸다. 또한 연호를 광무로 정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원구단을 만들어 이곳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했다. 고종은 조선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제1대 황제(재위기간 1863~1907)로 명성황후와 대원군의 세력다툼 속에서 일본을 비롯한 열강의 내정간섭을 겪었다.

순종은 대한제국의 제2대 황제로 고종과 명성황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907년 일제의 강요로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를 하면서 즉위했으나 1910년 국권을 일본에 빼앗기면서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흥선대원군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8.10.18
흥선대원군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8.10.18

흥선대원군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은 혈통으로 보면 인조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의 8세손으로 왕권과 가까운 왕족은 아니었다. 아버지 남연군이 정조의 이복형제인 은신군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영조로부터 이어지는 왕가의 가계에 편입, 왕위와 가까워졌다. 당시 안동김씨의 세도정치 상황에서 왕권과 가까워진 이하응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방법은 건달처럼 행세하는 것이었다. ‘궁도령’ 혹은 ‘상갓집 개’라는 치욕적인 별명까지 얻으며 세도가들의 눈을 피한 이하응은 조대비에게 접근, 철종이 후사가 없이 죽을 경우 자신의 둘째 아들 명복을 왕위 계승자로 지명하도록 설득했다. 이하응의 계획대로 그의 아들 명복은 12세에 왕위에 올랐으니 그가 바로 고종이다. 이하응은 왕이 아닌, 왕의 아버지 ‘대원군’이 되었다.

사진 속 흥선대원군의 관복에 장식된 흉배는 용이 아닌 ‘거북이’ 문양으로 장수를 기원한다. 고대부터 거북은 주술적인 효능이 있는 것으로 믿어졌으며 용의 머리와 같이 벽사귀면 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흥선대원군은 원래 기린 문양인 대원군 흉배를 거북 문양으로 바꿔 사용하기도 했다. 자세히 보면 십자훈장을 걸었는데 스스로 단 것은 아닐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사진은 컬러사진인데 시각효과를 위해 흑백으로 처리했으며, 얼굴 광대부분에 있는 약간의 흉터는 안동김씨 집안사람들로부터 건달행세를 하다 맞아서 생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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