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15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역 인근에서 한 노인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천지일보 2018.10.17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15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역 인근에서 한 노인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천지일보 2018.10.17

노인 교통사고 부상자 연간 4만명 육박

걸음 속도 비해서 보행 신호는 촉박해

노인들 “겁나서 밖에 못나가겠다” 토로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절반밖에 못 건넜는데 빨간불이 켜지면 겁이 나지. 초록불이 켜지자마자 가는데도 금세 빨간불 돼서 차가 쌩하고 지나간다니까. 겁나서 밖에 나가기도 싫어.”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 후암 삼거리의 횡단보도. 한 노인이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건너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횡단보도 초록불은 꺼진 상황. 삼거리를 돌아 나오는 차들과 빨간불 켜진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노인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아찔했다.

횡단보도를 건넌 어복희(84, 여)씨는 “뛰고 싶어도 다리가 아파 뛰지 못한다”며 “횡단보도 보행 신호 시간을 2초나 3초정도 더 늘려줬음 좋겠다”고 호소했다. 

횡단보도 보행 신호가 짧은 탓에 노인들이 사고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특히 교통사고로 다치거나 숨지는 노인이 한해 4만여명에 달하는 등 보행 환경 전반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병관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 사상자가 발생한 교통사고 건수는 5년 전보다 25% 가까이 증가했다. 교통사고 발생 건수가 늘어날수록 다치거나 숨진 노인의 수도 함께 늘어 고령 교통사고 부상자는 연간 4만명을 넘어섰다. 교통사고로 인한 고령 사망자는 2013년 1833명, 2014년 1815명, 2015년 1814명, 2016년 1732명, 2017년 1767명이었다.

국내 노인 보행자 사망사고는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이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15년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 10만명당 보행 중 사망자 수는 13.7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많았다. 이는 OECD 회원국 평균인 3.0명의 4.6배 수준에 해당한다.

교통약자를 위한 횡단보도 녹색신호시간 책정기준에 현실 반영이 전혀 안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우리나라 횡단보도 녹색신호시간 책정기준 일반인 보행속도는 1m/s다. 노인 등 교통약자를 위한 보행속도는 0.8m/s다. 1m/s는 1초에 1m를 이동하는 속도를 뜻한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15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역 인근에서 한 노인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천지일보 2018.10.17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15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역 인근에서 한 노인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천지일보 2018.10.17

하지만 최근 서울아산병원 연구팀이 65세 이상 노인 1348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남자 노인 하위 4분의 1의 보행속도는 초속 0.663m, 여자 노인 하위 4분의 1의 보행속도는 초속 0.545m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노인 보행속도인 초속 0.8m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이다.

앞서 경찰은 이와 관련해 올해 3월부터 노약자 통행이 잦은 복지시설이나 학교 주변 교차로의 경우 모든 방향 횡단보도가 동시에 보행 신호로 바뀌게끔 신호 체계를 개편하는 등 교통신호 운영체계를 종합적으로 개선하기로 했다.

하지만 노인들 사이에선 교통 신호 체계 개선을 체감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실제 기자가 현장에서 만난 노인들은 “신호가 시작되자마자 걸어도 힘들다” “보행 신호가 너무 짧다”고 입을 모았다. 또 횡단보도마다 구간 길이가 각각 다른데도 보행 신호는 동일한 점을 지적했다.

김인열(78, 여)씨는 “(횡단보도가) 어딜 가면 길고 어딜 가면 좁다. 그런데도 신호 시간은 다 똑같다”며 “나이가 많이 든 노인들은 걸음이 느려 맞춰 걷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차가 오면 막 뛰어야 하는데 다리가 아파 뛰지 못한다”며 “차들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신호가 길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순택(72, 남)씨도 횡단보도를 가까쓰로 건넌 후 “절반밖에 건너지 못했는데도 녹색불이 너무 빨리 꺼진다”며 “그냥 서있기도 다리 아픈데 급하게 건너려면 넘어져서 크게 다칠까봐 두렵기도 하다”고 말했다.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는 “고령화에 맞춰 스쿨존과 같은 노인보호구역(실버존)을 확대하고 지킬 수 있도록 권고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모든 도로에서는 사람보다 차가 중심이 되는 만큼 노인들도 보행에 더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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