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쌀이 없어 배를 곯았던 시절이 있었을까. 요즘처럼 쌀이 남아돌고, 오히려 다이어트를 한다고 하는 세대에게는 낯선 일일 테지만 실제 그랬다. 국민의 75%가 농사를 지었지만 ‘보릿고개’ 넘기기가 힘들었던 시절, 쌀 대신 값싼 보리와 밀 소비를 권장했던 시절이 있었다. 현재는 잘 사용하지 않는 ‘보릿고개’란 햇보리가 나올 때까지의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으로, 묵은 곡식은 거의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농촌의 식량 사정이 가장 어려운 때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 농진청 국립식량과학원 구석구석을 안내한 김춘송 박사 ⓒ천지일보(뉴스천지)

김밥용 쌀·키 크는 쌀을 아시나요?
13~15년 오랜 시간 걸려 벼 종자개발

[천지일보=장요한 기자] 지금은 건강식으로 간혹 먹는 보리밥을 그 시절은 매일매일 먹었다. 쌀 한 톨이라도 아끼려고 노력했다. 가난하고 배고픈 시기였기에 식량 증산이 중요한 정책이었다.

이때 농촌진흥청(농진청) 국립식량과학원에서 ‘통일벼’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단위당 수확량이 많아 우리 민족의 숙원인 ‘쌀 자급자족’을 이뤄낸 쾌거이다. 보릿고개로 대표되는 배고픔의 역사에서 벗어나 기본적인 먹거리는 생산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식량작물의 과학기술 개발을 맡고 있는 국립식량과학원은 지금까지 ‘식량주권 확보’라는 전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수한 품종과 재배기술을 지속적으로 연구해왔다.

보통 쌀이면 다 똑같은 쌀이라고 생각하지만 쌀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종자에 따라 열매의 크기도 다르고 당도 또한 다른 법이다. 이런 종자를 연구해 보다 이로운 작물을 만드는 것이 바로 국립식량원의 역할이다. 지난 여름 국립식량과학원을 찾은 기자에게 김춘송 박사는 무궁무진한 벼의 세계에 대해 안내해줬다.

김춘송 박사는 “종자연구는 미래에 대한 준비”라며 “벼의 경우 보통 한 품종을 개발하는 데 13~15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 벼는 1년에 한 번 재배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이 다소 많이 걸리는 것이다.

온실에서 재배할 경우 1년에 많게는 3회 정도 재배할 수 있어 연구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종자의 특성을 알기 위해선 땅에서 1년에 한 번 재배하는 것이 좋다.

김 박사는 “최근에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온도 습도 바람 CO₂함량도 조절해서 어떤 환경적 변화에서도 자랄 수 있는지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농진청은 지구온난화, 에너지 고갈, 수자원 부족으로 인해 예견되는 식량위기로부터 대처하고, 아시아 및 아프리카 지역의 식량 안보를 확보하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의미에서 국제미작연구소(IRRI)에 협력 지원을 약속했다.

김 박사는 “1991년 우리나라가 국제농업연구협의단에 가입하게 되면서부터 기술수혜국에서 기술공여국으로 지위가 바뀌고 많은 개발도상국들의 농업·농촌개발의 모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를 마친 종자들은 각 도의 농업기술원에 보내져 종장의 양을 늘린다. 이후 ‘종자관리소’에서 보급용이 최종적으로 생산된다. 벼 연구가 진행되는 ‘벼종합연구동’은 많은 온실들이 있다. 이 중 ‘벼육종온실관리동’에서는 현재 한창 연구 중인 벼가 자라고 있다.

▲ 최고 품종의 쌀(왼쪽)과 기능성 쌀의 대표적인 산업화 모델인 양조(釀造) 전용품종 설갱으로 만든 술(오른쪽) 등 다양한 벼의 세계가 전시돼 있는 농진청 국립식량과학원 ⓒ천지일보(뉴스천지)
김 박사는 “현재까지 개발한 벼의 종류가 무려 200개가 넘는다”며 “이들 벼 종류 중에서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벼에는 칠보 윤광 고품 삼광 진수미 하이아미 등 7종류가 있다”고 했다.

특히 최근 밥쌀용 쌀의 소비는 감소하는 반면 쌀을 재료로 하는 술 쌀국수 떡볶이 등의 가공용 쌀 소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또 건강·기능성 쌀의 개발도 활발해졌다.

최근 국립식량과학원에서는 가공 촉진을 위한 ‘기능성 및 가공용’ 쌀을 41품종 개발했다. 술 만드는 전용 쌀인 설갱벼가 있는가 하면 쌀국수 전용 쌀은 고아미벼, 김밥용 쌀은 백진주, 키 크는 쌀인 영안벼 등 기능성 특수미들이 인기다.

단순히 주식으로만 사용된다고 생각했던 쌀들이 연구원들의 수많은 연구를 통해 다양한 특징을 지닌 벼들로 탄생된 것이다.

하지만 2008년 국내에서 쌀을 가공용으로 사용한 것은 전체 쌀 생산량의 6%인 27만 톤에 불과하다. 반면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 전체 쌀 생산량의 14%인 104만 톤의 쌀을 가공용으로 소비하고 있어 국내에서도 쌀 소비를 위한 가공 산업의 활성화가 절실한 실정이다.

기능성 쌀의 대표적인 산업화 모델이 된 품종은 ‘설갱’이다. 설갱은 2001년 농진청에서 개발한 양조 전용품종으로 국순당과 공동연구를 통해 2007년 전통주 신제품 ‘백제주 담’을 생산함으로써 산업화의 결실을 보았다.

김 박사는 “설갱은 기본 벼 품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쌀로 외관이 뽀얗게 불투명해 찹쌀처럼 보이나 사실은 멥쌀”이라며 “전분구조가 일반 멥쌀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전분구조는 누룩균이 쌀에 잘 활착하고 번식이 왕성해 향기와 맛이 좋은 양질의 술을 만들 수 있게 해 준다.

설갱은 전통주와 발효쌀, 식초 등 다양한 형태의 양질의 발효식품을 개발하는 데 원료쌀로 각광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밥을 했을 때 매우 부드럽기 때문에 현미밥용으로도 알맞은 특성을 가져 향후 새로운 고부가가치의 쌀 가공품 소재로 다양하게 이용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 식량작물 기술개발의 주축인 농진청 국립식량과학원이 앞으로도 좋은 연구 성과를 거두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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