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창(왼쪽) 단장과 박용배(오른쪽) 부단장 ⓒ천지일보(뉴스천지)

26년간 내전 겪은 나라서 ‘빛과 소금’ 역할
현지 심장병·절름발이 어린이 환자 무료 수술 지원

[천지일보=백하나 기자] 한식의 참 맛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온 ‘한국음식봉사단(한식봉사단)’이 이번에는 스리랑카를 방문했다. 26년이 넘는 내전으로 생활고를 겪고 있는 현지인들은 UN의 도움조차 받지 못하고 있어 지원을 결심하게 됐다는 게 단체의 설명이다. 최영창 단장과 박용배 부단장을 만나 한식으로 봉사를 하게 된 이유와 스리랑카 방문은 어떠했는지 들어봤다.

◆ 어두운 곳을 찾아다닌 봉사단
음식 연구와 전수를 위해 1976년 한국요리연구회로 처음 출발한 한식봉사단은 봉사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은 지 4년이 됐다. 전문적인 실력을 갖춘 프로 요리사들이 한식을 세계에 알리고 있기 때문에 걸음은 늦었지만 탄탄한 실력 아래 순수한 봉사정신이 더해져 앞으로의 활동이 더욱 기대된다는 게 주변의 평가이다.

최 단장이 처음 음식 봉사에 길에 접어든 것은 인천 오이도 마라톤대회에서부터다. 아는 사람이 음식 재료를 줄 테니 100인분을 요리해 달라고 부탁해 요리 봉사를 시작하게 됐다. 이것이 경로당, 고아원 요리 봉사로 이어져 서울대생 밑반찬 지원 사업 등으로 점차 불이 붙었다.

요리연구회 시절부터 지금까지 함께해 온 박용배 부단장은 “예전부터 어려운 사람을 돕자는 얘기는 형님(최 단장)과 늘 해왔다. 봉사가 필요한 곳을 찾다 보니 정말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어 부모의 도움이 없는 아이들을 찾고자 전국 안 돌아다닌 곳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소년소녀 가장이나 고아들은 부모가 없으면 국가에서 보조금을 받을 길이라도 있지만, 부모가 있어도 제 역할을 못하거나 돌봄이 없는 아이들은 생계가 막막하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려운 사람들을 찾다 되니 해외에까지 손이 미치게 됐고 지금에 이르렀다.

출범 후 4년여 동안 다닌 곳은 미얀마 필리핀 라오스 캄보디아 등지의 개발도상국. 덥고 습한 기후, 열악한 오지에서 한식을 선보여야 하는 현지 사정은 결코 만만치 않다.

“정말 낙후된 곳을 가면 버너 하나, 칼 하나도 제대로 있는 곳이 없어요. 돼지고기를 자를 칼이 없어 도끼를 쓸 정도였으니까요.”

최 단장은 한국에서 일부 식재료를 가져가긴 하지만 다 가져갈 수 없어 현지 시장을 들른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현지인들에게 주문을 부탁하면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엉뚱한 재료를 받을 때도 있고, 기압이 낮은 곳이나 식기구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는 요리가 익지 않아 난감한 경우를 맞을 때도 종종 있고 했다. 그는 그렇기에 전문성을 갖춘 요리 실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지에서 마주치는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 처음 보는 재료로 한식의 맛을 내야 하는 재료에 대한 깊은 이해, 그러면서 적게는 100인분 많게는 1000여 인분에 달하는 요리를 해내는 내공까지. 이 모든 게 일반인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들의 실력은 현지의 즉각적인 반응에서부터 파악할 수 있다.

“쌀 전달식서 경제부 장·차관 직접 감사 인사 전해
한식의 세계화 위해서는 실무진 지원책 모색해야“

◆ 한식 세계화를 위해 해야 할 것
미국 캘리포니아 주 중부에 있는 새크라멘토에 갔을 때 일이다. 그 나라 UN 참전용사와 한인들, 정부 관계자와 대사를 초청해 파티를 연 자리에 한식을 선보일 기회가 있었다.

최 단장은 한식 하면 불고기·비빔밥·김치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주고 싶어 획기적인 한국 요리를 선보였다.

갈비는 찜으로, 도미 튀김은 찜으로, 김치 대신 인삼 겉절이를 해내 보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평소 김치와 불고기만을 생각하던 외국인들은 한국에 이런 요리가 있었느냐며 극찬을 했고 한인들도 주변 사람들을 불러 음식을 먹고 가라고 연락할 정도였다고 하니 단원들도 현지 반응에 깜짝 놀랐다.

최 단장은 “요리가 끝난 후 남은 음식을 싸가려고 하는 미국 요리사들도 있었다. 이 음식은 어떻게 하는 거냐는 질문이 쇄도해 집에 가지 못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들이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면 수중에 남은 것이 없다고 한다. 1000포가 넘는 쌀, 생필품을 후원금과 자비를 털어 진행하고 국내에서는 장학생 4여 명에게 30~40명 회원의 회비와 단원이 벌이를 나눠 장학금을 주고 나면 한 달 밥값 조금 남는 정도라고 하니 그들의 경제 사정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런 그들에게 아쉬운 점은 한식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나서는 일선 요리사들에게 정부가 너무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한식을 세계에 알리겠다고 하면서도 대학교수나 전문가만 모아 놓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내놓는 것이 비빔밥, 떡볶이 세계화이니 오죽 답답하겠습니까.”

박용배 부단장은 “한식에는 이런 음식 말고 다양한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한식 하면 아직도 전통 궁중요리나 전수를 생각하느냐”며 답답해했다. 이들은 한식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선 이론 정립이나 데이터화 등은 이론가가 하되 실질적인 노하우는 실무진에게 들어보고 함께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일선에서 일하고 있는 실무진이 해외에 나갈 때 통역관이라도 붙여줄 수 있는 지원책을 모색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 “가진 사람이 나누는 것 당연해”
어려운 상황이지만 지지를 보내는 후원자들의 사랑에 힘입어 이들은 또 스리랑카를 향하게 됐다.

추석 연휴를 반납하고 지난달 21일 출발해 4박 5일 일정으로 스리랑카를 방문한 한식봉사단은 현지 심장병, 절름발이 어린이 환자 수술비 지원, 쌀 3000포대 전달식 등을 함께 진행했다. 특히 이번 방문에는 스리랑카 정부의 실무진이 함께해 눈길을 끌었다.

▲ 심장병 어린이 수술을 위해 스리랑카 현지 국립 센트럴병원에 들른 박용배 부단장이 병원 관계자들과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환영을 받고 있다(오른쪽). 지난달 22일 비지라 스리랑카 고아원 아이들이 저녁 음식 대접을 받고 즐거워하고 있다. 한식봉사단은 이날 아이들에게 닭볶음과 샐러드 등을 대접하고 학용품과 옷, 신발 등을 나눠줬다(왼쪽). (사진제공: 한국음식봉사단)

▲ 지난달 23일 스리랑카 국무총리를 만난 한식봉사단은 내전으로 인명 피해가 큰 지역을 선정해 1000여 가구에 쌀을 전달했다. 전달식에는 현지 장관이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왼쪽). 일정 마지막 날인 24일 단원들이 쌀 2400포를 인근 주민에게 전달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오른쪽). (사진제공: 한국음식봉사단)

어린이 수술이 이뤄진 22일에는 현지 보건복지부 장관이 나와 단원들을 맞이했으며, 23~24일 5kg 쌀 3000포 전달식에는 경제 장·차관이 직접 나서 이들의 정성에 감사함을 전했다.

한식봉사단은 또 오랜 내전으로 고아가 현지 아이들을 위로하고자 고아원을 방문해 한식을 선보이고 신발 옷 노트 회충약 등 생필품를 전달했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최 단장은 “현지에서 반응이 아주 뜨거웠다”며 “이번 활동도 성공적이었다”고 뿌듯해했다.

지난달 17일 만남에서 추석을 한국에서 보내지 않는 것에 대해 가족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했다.

이에 대해 최 단장은 “조상님의 은덕을 기리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돌아가신 분을 기리는 것과 산 사람 백여 명을 살리는 길 중 어느 것을 선택하겠느냐고 자문해 본다면 내 결심이 결코 헛된 일은 아닐 것”이라며 봉사에 대한 뚜렷한 소신을 밝혔다.

봉사를 하는 이유를 물었다. 최 단장은 “어떤 사람들은 사랑을 실천한다, 봉사를 통해 보람을 느껴서 한다고 하지만 사실 거창한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갖고 있는 것을 가지지 못한 남에게 나눠주는 것은 사람의 도리 아니겠느냐”며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남에게 베풀면서 살아온 한국인의 정이 피 속에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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