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한국의 가을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다. 4계절의 순환과 아름다운 자연을 수혜 받은 우리는 큰 복을 타고난 셈이다. 악성 베토벤, 모차르트가 사랑했던 오스트리아 비엔나 숲이 아름답다고는 하나 수목이 무성한 야산에 불과하다. 

요즈음 전국 어느 지역을 가 봐도 비엔나 못지않은 숲과 공원들이 많다. 지자체마다 앞 다퉈 조성한 친환경 늪지도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시멘트 낙진으로 범벅이 됐던 단양 매포읍의 경우 늪지가 도시 풍경을 바꿔 놓았다. 영화촬영장소로 유명해진 서천군 신성리 갈대밭은 최고의 관광지가 됐다. 

중국 후난성 장지아지에(張家界)나 항주, 온주의 명산들은 세계적인 명소로 불린다. 그러나 한국의 금강산과는 비교할 수 없다. 옛날 중국인들마저 ‘고려국에 태어나 금강산을 구경하는 것이 소원(願生高麗國, 一見金剛山)’이라고 했을까. 

북한에서는 이 말이 북송 시인 소동파가 지은 시구라고 선전하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다. 중국의 한 자료는 당나라 때 인물 이정(李靖)의 기록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정은 당 태종대 북방전쟁에 참가해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그가 당시 고구려 땅인 금강산에 대한 동경을 표한 것일까. 당나라에서는 고구려를 ‘고려’라고 호칭했다. 

금강산은 계절에 따라 호칭이 다르다. 봄은 금강산(金剛山), 여름은 봉래산(蓬萊山), 가을은 풍악산(楓嶽山), 겨울은 개골산(皆骨山)으로 불렸다. 옛 기록에 신라 마지막 왕자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개골산으로 들어갔다’고 했는데 바로 금강산이다.

송도에 살았던 명기 황진이도 평생의 소원은 금강산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인들이 외지에 나가는 것을 금지 시켰던 사회에서 금강산 여행은 불가능했다. 

황진이는 꾀를 생각해 냈다. 거문고를 잘 타는 젊은이를 애인삼아 남장을 하고 함께 금강산으로 떠난 것이다. 여 시인은 금강산을 보고 숱한 시심이 발동했으나 시 한수를 남기지 못했다. 금강산을 다녀 온 것만으로도 불법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녀는 기녀의 신분으로 많은 연인들이 있었지만 그 누구와도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가을밤이면 연인 생각으로 외로웠던 것인가. 

- 내 언제 무신(無信)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대/ 월침(月沈) 삼경(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秋風)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하리요 -

추풍이 싸늘해진 10월도 중순에 접어들었다. 지금은 갈 수 없는 풍악, 금강산은 어떤 현란한 모습으로 단장되고 있을까. ‘고려국에 태어나 금강산 구경이 평생소원’이었던 옛말대로 한국을 동경하는 중국인들이 많다. 깨끗한 환경, 질 높은 문화생활을 부러워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 한국의 자유를 제일로 꼽는다.  

최근 ‘굿 뉴스’는 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라는 평가가 외국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사회발전조사기구(Social Progress Imperative)의 조사결과 세계 146개국 가운데 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 18위에 랭크됐다. 영양 및 기본 의료지원, 물·위생, 주거, 개인 안전 등 부문에서는 96점으로 10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은 보수와 진보의 갈등, 중소상공인들의 좌절, 미·중 무역 전쟁 등 총체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반대편의 바른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현 정부의 일방적 독주가 국민통합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불가 화엄경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는 것이다. 오방색의 현란함으로 물들어 가는 아름다운 가을, 희망을 키워 보자. 외국의 평가대로 그래도 대한민국은 괜찮은 나라,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닌가.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