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철 기술경영학 박사

 

‘인공지능(AI)의 아버지’라 불리는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Alan M. Turing; 1912~1954)에 대해서는 이전 AI관련 칼럼에서 짧게 언급한 바 있다. 불과 30년을 약간 넘는 삶을 살았지만 수학자이자 암호 및 논리학자로도 그 위대함을 평가받는 튜링은, 현 알고리즘과 계산이라는 개념을 ‘튜링머신’이라는 추상형 모델로 구현해 형체화하는 등 현재의 컴퓨터 과학의 선도적 인물이자 가장 뛰어난 업적을 만든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단언할 수는 없어도 IT분야 노벨상이 있었다면 의당 최초 수상자는 튜링이 돼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보는 관점에 따라 세계 최초의 디지털컴퓨터인 마크1을 개발한 애이킨(H. Aiken)이나, 선형프로그래밍 방식을 통한 디지털 정보처리 방식의 획기적 개선을 가져온 폰 노이만(V. Neumann), 혹은 정보이론의 창시자인 샤논(C. Shannon)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 천재 수학자가 불과 20대 초반에 제안한 튜링머신의 개념이 현대 컴퓨터의 시작이었음을 감안하면 필자와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도 이를 인정하지 않을까 싶다. 

튜링머신은 어떤 문제에 대한 해답을 산출하는 알고리즘으로 제안됐으며, 이러한 개념을 좀 더 확장해 알고리즘이 좀 더 빠르게, 자동으로 동작해 작업의 효율성을 더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튜링은 그의 스승인 괴델이 주장한 불완전성의 정리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해석해 기계를 구성하는 부품, 즉 무한히 사용가능한 칸으로 구성된 테이프, 기계장치, 테이프에 사용하는 기호, 기계들의 작동규칙 등의 부품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기계적’ 방식으로 괴델의 불완정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즉 기계가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할 수 없는 것이 전혀 없다는 매우 단순한 ‘기계적 사고’를 통한 불완전성 극복 방안을 제시했던 것이다.

범용 튜링머신(Universal Turing Machine)은 튜링머신이 고안된 이후 특정계산용이 아니라 모든 계산을 하나의 기계가 처리할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입력된 프로그램을 모방해 해당 작업을 수행하는 방식이므로 모방기기(Imitation Machine)라고도 불렸으며, 바로 이 범용튜링머신이 현대 컴퓨터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 또한 2차 세계대전시 독일군의 암호체계인 에니그마(Enigma; 수수께끼라는 그리스어)를 해독해 전쟁 종식에 엄청난 공헌을 했다는 것은 과학사뿐 아니라 인류사적으로도 매우 큰 그의 업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현재의 AI산업의 효시라고 볼 수 있는 1950년에 발표한 그의 ‘계산기계와 지능’이라는 논문에서 그는 유명한 ‘튜링테스트’를 제안했는데, 이는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사고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을 나타낸 것으로, 사람이 인공지능과 대화를 나누었을 때, 사람이 대화의 상대가 인공지능인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면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사고를 할 수 있으며, 50년 후 즉 2000년 이후에는 일반인이 5분 동안 인공지능과 대화를 나눈 후, 상대방이 인공지능임을 알아챌 수 있는 확률이 70%를 넘지 않는 우수한 인공지능이 개발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컴퓨터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당시에 튜링은 이미 기계의 급속한 발전과 이들의 진화를 통한, 사람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의 개발을 예견했다는 것은, 그가 콜로서스라 명명한 세계 최초의 컴퓨터를 발명해–공식적으로는 애이킨의 마크 1이 세계최초라 할 수 있으나, 그보다 약 2년 전 발명됐으나 군사정보 보호 차원에서 출시를 미공개한 콜로서스가 실질적인 세계 최초의 디지털 컴퓨터라 할 수 있다.– 독일 나치정부가 자랑하는 암호화 체계를 깨뜨린 것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현재 인류가 누리고 있는 보편적 IT산업에의 미래지향적, 생산적 사고와 개발토양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위대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즉 복잡한 명제를 단순화해 명료한 해법을 제시한 그의 연구방법이야말로 바로 IT분야 연구에 필요한 방법론적 자세라 할 수 있다. 당시에는 범죄였던 동성애자로 드러나 독약이 든 사과를 베어 먹고 자살을 선택한 그에게 애플사의 로고인 ‘한입 베어 문 사과’는 튜링의 이름을 기리는 영원한 이미지로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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