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초빙교수

국내 스포츠 스타 가운데 박찬호만큼 롤러코스터를 타듯 성공과 위기를 넘나들었던 선수는 많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스타들은 정상에서 내리막을 타면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세인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도 여느 선수들처럼 성공 뒤에 위기를 맞았다.

글로벌 무대인 미국 메이저리그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진출한 이후 최고의 성적, 최고의 연봉 계약 등으로 성공적인 스타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가 성적부진과 부상 등으로 마이너리그와 여러 팀을 전전하며 선수생활에서 큰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특히 박찬호는 어떤 선수들보다 더 화려한 영광을 누렸던 것에 비례해 위기의 강도도 그만큼 컸다.

허나 어려웠던 고비들을 잘 극복하고 이제는 한국 야구사에 불세출의 기록을 남길 위대한 선수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박찬호는 지난 2일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경기에 3-1로 앞선 5회말 구원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3이닝 동안 삼진 6개를 솎아내며 퍼펙트로 막아내 시즌 4승를 올렸다. 이로써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개인 통산 승수를 124승(98패)으로 늘려 일본인 투수 노모 히데오(은퇴)가 보유하고 있던 메이저리그 아시아 투수 최다승(123승 109패)을 넘어섰다. 17년 영욕의 세월을 쌓으면서 마침내 아시아 투수 최다승 기록을 달성한 것이다.

1994년 미국으로 건너갈 때 그의 성공을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예상을 뒤집고 노모를 넘어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 잡았다.

그동안 박찬호는 국내 언론을 통해 한국 대표선수이자 국민적 스타로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IMF체제로 국내 경제가 어려움을 겪던 1990년대 말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며 민간외교사절로 국가홍보도 톡톡히 해낸 박찬호의 일거수일투족은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필자는 현역 언론인 시절 박찬호를 직접 취재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활약상과 관련한 신문 제작을 여러 번 한 적이 있었다. 그 중 한 토막, 박찬호가 2002년 5년간 6500만 달러에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하는 계약을 했을 때 모 스포츠 신문 1면 헤드라인을 어떻게 뽑을까 고민하다가 ‘박찬호 하루 5천만 원씩 번다’로 결정했다.

수천만 달러의 돈 액수가 일반인들에게는 실감이 나지 않아 고액 연봉이 주는 느낌을 실제적으로 주기 위해 제목을 이렇게 뽑아 신문에 내보냈다. 독자들의 반응은 아주 좋았다.

그간 박찬호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대체적으로 긍정적이었지만 부정적인 때도 있었다. 1997년 14승을 거두고 금의환향할 때 그는 단연 최고의 스타였다. 그러나 미국식으로 TV와 신문 등에 출연료를 요구하며 스타대접을 고집하다가 ‘돈과의 만남이었다’ ‘돈만 아는 선수’라며 호되게 언론에 난타를 당하기도 했다.

2005년 부진을 거듭하던 때는 메이저리그 선발투수 187명 중 182위, 1달러의 금전적 평가와 함께 잘못된 계약과 형편없는 기록으로 대표되는 선수로 메이저리그 공식사이트인 MLB.com에 평가되기도 했다.

이번에 메이저리그 아시아 최다승 신기록을 세우던 날 MLB.com은 “박찬호가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고 치켜세웠다. 박찬호가 오늘날과 같이 메이저리그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위기에서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일어서는 정신력과 열정을 꼽을 수 있겠다. 투수로서는 이미 환갑의 나이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는 3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 싱싱한 체력과 위력적인 투구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힘의 원천은 무명선수에서 메이저리그로 발탁돼 고속 성장의 사다리에 올라탄 뒤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과 오로지 야구에만 몰입하는 그만의 열정이었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의 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국내 프로야구로 돌아와 여건이 허용하는 대로 선수로 뛰며 국내 프로야구의 흥행과 발전에 기여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듯하다.

그동안 많은 국민적인 스타들이 탄생하고 사라졌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처럼 한국프로야구를 위해서 큰 무엇인가를 보여줘 명멸한 여느 국민스타들과 달리 팬들에게 위대한 스타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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