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얼마 전 한 방송에서 어느 중소기업 사장의 죽음을 통해 대기업의 ‘갑질’과 이를 바로잡아야 할 공정위와의 부당한 거래 실태를 고발한 적이 있었다. 물론 낯선 얘기는 아니다. 그동안 대기업과 그 협력사들 순으로 이어지는 고질적인 갑질 얘기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말이 ‘협력사’이지 하청 기업 또는 ‘노예’에 다름 아니며 그 약자의 편에 서야 할 공정위조차 그들 편이 되지 못하는 현실에 절망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전되면서, 그리고 경제수준이 높아지는 과정에서 어느새 ‘갑질’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를 ‘상징’하는 말처럼 돼버렸다. 아직 민주화는 성숙되지 못하고 있고 경제 수준은 심각한 양극화를 초래하고 있는 시점에서 ‘갑질’이라는 적폐가 우리 사회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비단 경제 영역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 각종 영역에서 갑질의 횡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만연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오죽 했으면 ‘갑질 공화국’이란 말까지 나왔을까 싶다.

최근 일부 대기업 총수 일가의 오만하고 몰상식한 일탈을 국민은 생생하게 지켜봤다. 하지만 그런 행태가 ‘개인적’인 것이며, 그리고 정말 ‘일부’의 행태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다. 그것은 구조의 문제이며 이미 고착된 ‘그들의 천하’임을 노골적으로 말해주는 결정적인 ‘단면’으로 봐야 한다. 대기업을 정점으로 그 하위체계로 이어지는 무소불위의 갑질 횡포는 마치 그물망처럼 촘촘하다. 그 구조적 특징이 한국 사회 전반으로 확산돼서 이제는 ‘갑질 공화국’으로 고착된 것이다. 거의 예외가 없어 보인다. 동네 골목 상권도 마찬가지이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는 말은 그냥 웃어넘길 얘기가 아니다.

공정위부터 거듭나야 한다

지난 10일 공정위 월례조회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발언 도중 감정에 북받친 듯 눈물을 보였다는 뉴스가 나왔다. 김 위원장은 이날 인사말에서 “지난 1년 4개월간 전원회의를 주재하며 3천 페이지가 넘는 심사보고서 등을 많이 접했고 그 안에 여러분에 대한 열정과 남다른 사명감을 봤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공정위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냉소는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는 비판 여론에 대한 자괴감의 발로였을 것이다. 게다가 공정위 퇴직 간부들의 불법적 재취업 실태가 보도되면서 공정위에 대한 비난 여론이 최악의 상황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도 큰 몫을 차지했을 것이다. 이에 김 위원장은 “공정위 직원이 가족, 친치, 친구 앞에서 공정위 직원임을 자부할 수 있도록 계속 고민하고 소통하고 실천해 나가겠다”고 다짐하면서 모두 ‘함께 가자’는 말로 호소하듯 당부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대한민국이 ‘갑질 공화국’에 이른 근본적 책임은 정치권력에 있다. 정치권력에게 대기업 등의 횡포와 불공정 거래에 대해 감시하고 견제하라 했더니 오히려 그들과 ‘한 패’가 됐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특히 공정위는 그중에 핵심이다. 공정위는 독점 및 불공정 거래에 관한 사안을 심의 의결하기 위해 설립된 합의제 준사법기관이다. 따라서 ‘경제검찰’로 부르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설립된 공정위가 제 역할을 못하거나 오히려 또 하나의 적폐로 전락한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겠는가. 바로 ‘갑질 공화국’으로 변질되고 만다는 사실을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6월 김상조 위원장의 취임은 세간에 큰 화제를 몰고 왔다. 깐깐한 학자로서 그리고 삼성 등 재벌의 불공정과 불법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했던 시민운동가로서의 삶이 워낙 화려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공정위에 이제 제대로 된 임자가 나타났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더욱이 ‘피플 파워’를 강조했던 문재인 정부의 위상에도 딱 맞는 인사였다. 이에 수구 기득권세력의 저항과 음해는 오히려 김상조 위원장 체제에 힘을 실어준 꼴이 됐다. 그런 김상조 위원장이 지난 10일 오히려 죄송하다고, 부탁한다고 말하며 눈물까지 보였다는 것은 공정위가 처한 참담한 현실을 그대로 웅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앞선다. 공정위의 혁신, 아직도 갈 길이 너무 멀다는 뜻이다.

공정위 직원들의 과중한 업무와 제도적 한계로 인한 사기 저하는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한다. 따라서 열심히 일하는 공정위 직원들의 의지까지 폄하할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지난 1년간에도 대기업의 내부거래가 증가했다는 소식이나 중소기업들의 더 절박한 하소연 그리고 공정위 퇴직 간부들의 갑질 재취직 문제는 간단히 넘길 일이 아니다. 또 이전 정부 때도 그랬다고 넘어갈 것인가. 공정위의 존재 이유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정위, 아니 김상조 체제의 공정위에 거는 기대는 여전히 크다. 공정거래법 개편이나 공정위의 역할 재정립 그리고 향후 과제 설정을 보면 사안의 핵심을 제대로 짚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기업 문제에 집중하느라 그동안 놓쳐버린 공기업의 갑질 행태까지 임기 3년차 과제로 거론한 것은 만시지탄이다. 과거 공정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대목이다. 그리고 이런 과제를 위해 범정부적인 협력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것은 의지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김상조 위원장은 더 이상의 눈물을 보이지 마시라.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관료권력으로부터 공기업과 대기업 그리고 중소기업을 거쳐 영세자영업까지 연결되는 무시무시한 ‘대한민국 갑질의 쇠사슬’을 끊어내지 않는 한 이 땅에는 희망이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어쩌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이다. 이런 시점에서 다시 신발끈을 조이는 김상조 위원장의 결기에 큰 신뢰를 보내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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