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훤 행복플러스연구소 소장 

 

우리 대부분은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뜻을 정확히 찾아보지 않아서 많이 사용하지 않더라도 마음속에는 누구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이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1. 모양이나 색깔, 소리 따위가 마음에 들어 만족스럽고 좋은 느낌.
2. 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함.

물론 필자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몇 년 전에 작고하신 고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분은 아름다움은 ‘알음다움’에서 나온 말이며 그것의 반대말은 ‘모름다움’이라고 했다.

그 이후에 그 말씀을 새기면서 사람이나 사물을 보는 버릇이 생겼다. 사람도 겉모습이 아니라 진정한 그의 모습을 보고, 알게 될 때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신영복 선생님께서 강의 중에 말씀하셨던 이야기 중에 아직도 기억에 남은 이야기가 있다. 날품을 팔아서 병든 아내와 아이들을 돌보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날품팔이로 번 돈이 부족할 때에는 병원에 가서 피를 팔아서 집으로 돌아갔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신 선생님께 자신은 피를 빼러 가기 전에 꼭 물을 몇 대접 마시고 간다고, 하지만 자신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는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는 뜻이었고 왜일까 생각해보니 그는 피를 뽑기 전에 물을 마시는 것 자체가 피에 물을 타는 것과 같은 이치로 생각을 했고 그것으로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는 뜻이었다는 것이다. 물은 혈관으로 들어가지 않으므로 상관없다고 했지만 그가 아는 상식의 선을 넘을 수 없었던 그는 마장동에서 가축을 잡을 때에도 물을 많이 먹이지 않느냐며 자신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는 말을 반복하더라고 했다.

신영복 선생님은 그의 마음에서 혹시나 물탄 피를 팔아서 그로 인해 누군가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그의 마음을 읽었고 그 마음 자체가 아름답다고 생각해서 말씀하셨던 것 같다. 필자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그의 상황자체를 몰랐다면 그저 무식한 한 사람으로 남을 이야기이지만 그를 좀 더 잘 알게 됨으로써 그의 마음에 있는, 누구도 흉내 내기 힘든 순수한 양심을 아름답게 본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드니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더 많은가보다.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 낸 듯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얼굴도 아름답고 갓 태어난 아기도 아름답다. 그리고 이름도 알 수 없는 들꽃도 아름답고, 심지어 그저 푸른 풀도 아름답다. 몇십년은 족히 살아서 거무튀튀한 나무가죽도 아름답고, 어느 정원에서 본 “아저씨”라고 부르던 앵무새도 아름다웠다. 그런 모든 것이 세상을 좀 더 알게 된 것이구나 생각하니 뿌듯하다.

물론 사물에 대해서 더욱 잘 알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특히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서 좀 더 잘 알고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서 더 많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서로 알게 되고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동시에 불행함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곧 행복한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더 많이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더 다가가고 더 잘 알게 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이 가을에 좀 더 많은 사람이나 사물들을 아름답게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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