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근  대표가  5일  본지와  인터뷰  한  뒤  이방자  여사의  대표작인  칠보  혼례복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0.8
정하근 대표가 5일 본지와 인터뷰 한 뒤 이방자 여사의 대표작인 칠보 혼례복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0.8

고미술 전문 갤러리인 고은당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칠보 혼례복 등 소장품 공개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비 내리는 데 괜찮을까?’ 그날은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유난히 무거웠다. 전시 준비를 위해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인 이방자 여사의 동양화 작품을 10여평의 가게 바닥에 진열해 놓은 상태였다. 폭우는 아니었지만 내리는 빗물에 그림이 젖을까 내내 걱정이 됐다. 밤 9시가 넘었지만 결국 발걸음을 돌렸다.

가게 문을 다시 열고 들어갔다.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차디찬 물기가 느껴졌다. 이미 동양화 그림 액자의 턱까지 물이 차올랐다. 순간 머리는 ‘쭈뼛쭈뼛’했고, 온 몸에는 소름이 돋았다.

소장품전에 공개된 이방자 여사 작품 ⓒ천지일보 2018.10.8
소장품전에 공개된 이방자 여사 작품 ⓒ천지일보 2018.10.8

그렇게 멈춰 있는 것도 잠시, 정신없이 수십 여점의 동양화 작품을 물에서 건져 진열대 위로 올렸다. 10~20분만 늦었어도 그림에 물이 들어가 작품은 훼손될 뻔했다. 알고 보니 옆 상점의 하수구가 막혀 역류한 물이 들어온 것이었다.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이방자 여사 작품전(정하근 소장품)’에서 만난 고미술 전문 갤러리 고은당의 정하근 대표는 3년 전 그날을 떠올렸다. 이방자 여사가 남긴 작품이 하마터면 훼손될 뻔한 날이었다. 퇴근 후 한 번도 가게로 들어간 적 없는데 이날은 유난히 이상했다고 한다.

정 대표는 “동양화는 물이 닿으면 먹이 번져 금방 망가진다”며 “(작품이 물에 젖는다고 알리기 위해) 이방자 여사의 혼이 마치 나를 다시 부른 듯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지난 30여년간 사재를 털어 이방자 여사의 작품을 수집해 왔다. 이방자 여사가 남긴 작품이 상업적인 대상이 돼 거래되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였다. 이같이 모아진 이방자 여사의 생전 유품과 다양한 예술작품은 지난 3일부터 15일까지 대중에게 공개된다. 이방자 여사 작품의 대표작은 ‘칠보 혼례복’이다. 100여년전 결혼 기념엽서, 가구와 의상, 서적, 회화작품 등도 포함돼 있다.

소장품전에 공개된 이방자 여사 작품 ⓒ천지일보 2018.10.8
소장품전에 공개된 이방자 여사 작품 ⓒ천지일보 2018.10.8

그가 처음 이방자 여사의 작품을 수집하게 된 것은 1980년대 초다. 우연히 이방자 여사의 작품 바자회에 참석했다. 이곳에서 만난 이방자 여사는 키가 작고 얼굴이 갸름하고 하얬다고 한다. 그리고 정숙해 보였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말 정도만 가능했지만 누구보다 따뜻해 보였다고 한다. 그렇게 정 대표는 두 차례 이방자 여사를 만났고 간단한 인사를 나눴다.

일본 황족으로 태어난 이방자 여사는 자신의 삶을 받아들였고,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한 인물이었다. 실제로 일본 메이지 천황의 조카인 이방자 여사는 대한제국 제1대 황제인 고종(高宗)의 일곱째 아들인 대한제국 황태자 이은(李垠)과 일본에서 결혼했다. 한국에서는 창덕궁 낙선재에 기거했다.

1971년 수원시 탑동에 정신지체아 교육시설인 ‘자혜학교’를 세웠다. 1982년에는 신체 장애아 교육시설 ‘명혜학교’를 광명시에 세웠다. 이방자 여사는 바자회를 통해 번 수익금을 전액 지체장애인을 위해 사용했다.

또한 일본에서 배운 칠보 기술로 서울칠보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리고 신체장애인의 재활과 가난한 한국 젊은이의 자립을 위해 기술을 전수했다. 평생을 헌신적인 열정으로 소외된 이들을 위한 삶을 산 셈이다.

하지만 이처럼 희생적인 삶을 산 이방자 여사에 대해 아는 이들이 별로 없다 한다. 정 대표가 이 전시를 열게 된 가장 큰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이방자 여사 사진 (제공: 고미술품 전문 갤러리인 고은당) ⓒ천지일보 2018.9.28
이방자 여사 사진 (제공: 고미술품 전문 갤러리인 고은당) ⓒ천지일보 2018.9.28

정 대표는 “이방자 여사의 삶은 우리의 근현대사 안에 속해 있지만, 여전히 이방자 여사를 잘 모르는 이가 있다”며 “바자회를 통해 번 수익금을 사적으로 사용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자신이 가진 재능을 아낌없이 나눠준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그가 수집한 작품은 이방자 여사의 희생적인 삶을 대신 알려주고 있었다.

일본 측에서는 이방자 여사의 작품을 구입하길 원해 정 대표에게 접촉을 해온다고 한다. 하지만 정 대표는 일본 측의 제안을 거절해 왔다.

정 대표는 “이방자 여사의 삶과 작품의 가치를 아는 일본은 이방자 여사와 관련한 기념관을 만들고 싶어 해 수년 전부터 작품을 팔라고 말하고 있다”며 “하지만 우리의 근현대사의 한 부분이기에 국내에 박물관이 만들어져야 한다”라고 전했다.

이어 “우리나라 정부와 국민도 이방자 여사의 작품의 가치를 알고 함께 보존하는 데 힘써주길 바란다”며 “문화에 대한 가치관도 높이고 문화정책도 발전시켜 후손에게 잘 물려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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