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세계를 이드(id), 에고(ego), 슈퍼에고(superego)로 구분했다. 그에 따르면 이드는 감정, 욕구, 충동, 과거의 경험 등이 결집된 무의식적 본능이다. 인간의 행동은 성욕인 리비도와 공격성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이드의 속성은 생존본능과 종족보존본능이다. 뇌에서는 시상하부의 기능과 유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고는 이드와 슈퍼에고로부터의 요구를 받아들여 외부세계의 자극을 조절하고 타자와 자기를 구분해 독립적 존재로 인식하는 심리적 작용이다. 뇌에서는 대뇌와 유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슈퍼에고는 초월적 자아로 도덕, 윤리, 양심, 금지, 이상과 같은 통제적 기능을 담당한다. 슈퍼에고는 전두엽과 유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로이트의 이드는 본능 또는 감성(感性), 에고는 이성(理性), 슈퍼에고는 영성(靈性)으로 바꾸어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사회활동으로 치환하면 정치, 경제, 예술은 기본적으로 이드를 해소하기 위한 활동, 학문은 에고를 발전시키기 위한 활동, 종교는 슈퍼에고를 강화하기 위한 활동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16세기 동아시아는 본능과 이성과 영성이 동시에 용솟음친 시대였다. 일본은 중앙권력이 무너진 상황에서 각지에서 할거한 세력가들이 생존본능을 위해 격렬한 투쟁을 펼쳤다. 본능적 욕구가 가장 첨예화된 해결방식은 전쟁이다. 그들은 무력만이 삶을 지탱하는 최선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들의 세계에서는 이드가 지배했다. 조선은 건국초기에 국가경영의 좌표였던 유학이 건전성을 잃고 통치 집단만의 왜곡된 철학으로 변질되면서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초래했다. 건전한 에고가 합리성을 잃자 슈퍼에고로 작동되던 예교(禮敎)는 계급질서를 지탱하는 보수적 윤리관으로 변해 통합과 조화라는 본질보다는 갈등의 원인으로 작동했다. 중국은 동아시아 평화체제를 구축했던 강국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통치 집단 내부의 갈등이 첨예화되어 붕궤의 길로 접어들었다. 결국은 동아시아의 슈퍼에고가 사리진 셈이다. 군사적으로 내부를 통합한 일본이 그들만의 방식인 무력으로 노후화된 동아시아 질서를 무너뜨린 사건이 임진왜란이다.

우리가 사명대사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그가 슈퍼에고로 이드의 무질서한 분출을 제거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전쟁의 와중에서 그는 여러 차례 적진과 원군으로 파병된 명군의 진영을 오가며 이 전쟁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일본군이 물러간 후에는 조선의 관리들을 제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새로운 정치지도자와 전후 문제를 상의했다. 전쟁은 정치의 영역이지 종교가 주도할 과제는 아니었다. 당시 조선이 비주류였던 불교의 출가승을 일본으로 파견한 이유는 관방철학인 유교적 관념으로 국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종교적 영성이 필요했다. 엄밀한 의미에서 유교는 종교가 아니다. 중국을 중심으로 발달한 도교는 사회적 갈등을 통합하기보다는 개인적 양생과 기복으로 변질됐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격변하는 국제질서를 감당할 능력이 부족했다. 오랫동안 동아시아의 정치권력에 의해 배제됐던 불교가 새로운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역할을 담당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다시 소란을 피울 때까지 오랫동안 이드의 분출을 극도로 자제하고 동아시아의 트러블 메이커가 되지 않았다. 그 배경에 불교의 영성이 있었고, 그것을 인도한 것은 사명과 그를 수행한 승려들이었다. 지금 아시아는 경제발전이라는 이드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욕망의 극대화 이후에는 충돌이 뒤따른다. 종교가 영성을 이끌어야 하는 시대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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