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최근 남북한의 국가적인 행사를 통해 서로 다른 길을 걸었던 남북한 태권도를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지난달 19일 평양 5.1경기장(일명 능라도경기장)에서 남북 정상이 함께 관람한 북한 대집단체조 공연에서 선보인 북한 태권도는 실전형 격투기가 주를 이뤘다.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을 기념해 만든 ‘빛나는 조국’이라는 집단체조공연에서 핵심적인 행사였던 북한 태권도 시범은 ‘무술’이라기보다는 싸움 기술을 연마하는 대련 같았다. 상대를 주먹과 발기술로 제압하고, 송판 격파기술로 힘을 과시하는 ‘호신술’처럼 보였다. 태권도 시범이 펼쳐질 때, 관중석 카드섹션에는 ‘민족의 존엄 만방에 떨치자’라는 선전구호가 등장했다. 북한 태권도를 민족의 존엄한 가치의 대상으로 여기고 이를 세계에 적극적으로 알리자는 의미일 것이다. 

지난 1일 용산 전쟁기념관에서는 열린 건군 70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도 태권도 공연이 있었다. 이날 육군 1, 3군 사령부 태권도 시범단이 펼친 공연은 그야말로 ‘퍼포먼스’였다. 양희은이 불렀던 ‘늙은 군인의 노래’ 음악에 맞춰 시범단 중 1명이 등장해 태권도 품새와 태권무를 선보였다. 이어 태권도 시범단은 태권도 기본동작을 응용해서 만든 창작 품새로, 태권도의 강인함과 부드러움을 표현했고, 힙합과 EDM 음악을 접목한 개성 넘치는 퍼포먼스와 격파를 선보였으며 마지막으로 ‘아리랑’ 곡에 맞춰 태권도 군무를 펼쳤다.

남북 양정상이 만나 비핵화와 남북 평화를 모색하고 있는 요즘, 남북한 태권도가 오늘날처럼 이렇게 달라진 이유를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보며 한번 생각해보았다. 남북한 태권도가 시대와 남북한 안보 환경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남북한 태권도는 지난 수십년간 군을 통해 국가안보의 파수꾼으로, 또 남북한 세계화의 선도자로 역할을 해왔다.

지금은 태권도가  남북한이 회장국으로 각기 주도하고 있는 세계태권도연맹(WT)과 국제태권도연맹(ITF) 두 단체로 갈려있지만 원래는 한 뿌리였다. 지난 1960년대 청도관, 지도관, 무덕관, 창무관, 오도관 등 이름을 달리하는 도장에서 계보가 다른 방식으로 수련되던 태권도는 예비역 육군소장 출신인 최홍희씨가 대한태권도협회로 통합한 뒤 국제태권도연맹을 만들었다. 이후 최홍희씨가 박정희 정권에 반기를 들고 해외로 망명한 뒤 김운용씨가 1970년대 초 세계태권도연맹을 창설하면서 태권도는 ‘한 집안, 두 식구’ 체제가 됐다. 태권도의 세계화를 위해 세계태권도연맹은 박정희 정권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성장했고, 국제태권도연맹은 최홍희씨가 북한 정권의 지원을 받아 운영했던 것이다. 

두 단체는 서로 독자적으로 세계선수권대회를 개최하고 태권도 사범 등을 해외에 파견하면서 남북한 이념과 체제의 경쟁장이 됐다. 김운용 세계태권도연맹 회장이 1990년대 중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태권도를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시키는 데 성공함에 따라 남북한 태권도의 경쟁은 사실상 승부가 갈렸다. 세계태권도연맹이 주도하는 태권도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부터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본격 채택되면서 세계 각국의 비상한 관심을 받으며 명실상부한 ‘세계화 종목’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태권도연맹은 이후 태권도의 인기를 높이기 위해 태권도 품새, 태권무 등 다양하고 역동적인 아이템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북한이 주도한 국제태권도연맹은 평양에서 주로 세계선수권대회 등을 개최하면서 올림픽 태권도와 별도의 길을 걸어왔지만 세계 각국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오랫동안 1인 독재체제와 폐쇄적인 북한 사회의 특성으로 인해 북한 태권도는 군부대에서 주로 운영됐고, 군을 앞세운 ‘선군정치’ 통치방식에 따라 실전형 격투기 위주가 됐던 것이다. 남북한 태권도는 자유 민주주의 사회와 1인 독재 공산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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