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휘 정치학박사, 문화안보연구원 이사 

 

판문점선언(4월 27일)에 이어 싱가포르선언(6월 12일) 그리고 평양선언(9월 19일)에 이르는 숨 가쁜 한반도의 정상회담 열차가 달려가고 있다. ‘선언정치’라고 할 수 있는 정상들의 약속이벤트가 국민과 세계인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선언이라는 것은 ‘국가나 단체가 자기의 방침과 주장을 외부에 정식으로 표명’이라는 사전적 의미로 볼 때도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가 동반되는 내용으로 취급된다. 따라서 선언대로 업무가 추진되지 않는다면 한낱 휴지조각에 불과하게 되는 것으로 국정책임자는 함부로 남발해서는 안된다. 선언은 조약도 국민적 공감을 기반으로 추진해야 하는데 작금의 선언들은 비핵화문제보다도 남북관계 치적 쌓기로 자칫 국가안보의 핵심의제를 외면한 듯한 우려의 눈길을 증폭시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세 번째로 열린 지난 9월 19일 남북정상회담의 3대 의제는 ‘비핵화 진전’과 ‘남북관계 개선’, ‘군사적 긴장 완화 및 전쟁위험 종식’이었다. 평양선언은 성과측면에서 남북관계가 실질적으로 진전되는 전기(轉機)의 가능성을 보였으나 그 실속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로 ‘비핵화 진전’ 측면에서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영구폐기하기로 하는 것은 일회성 행사이므로 진정성면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나 성의 있는 선언이행조치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담겨진 내용에는 미국이 이후 6.12 북미공동성명에 따른 ‘상응조치’를 취할 경우에 영변핵시설의 영구폐기 등의 추가 조치를 취하겠다는 조건부이기 때문에 선언을 뒤집을 수 있는 우려가 있다. 향후 제2차 북미회담이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개연성이 지대하므로 북한의 비핵화문제는 좀 더 관망해볼 수밖에 없다.

둘째로 ‘남북관계 개선’ 측면에서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의 정상화를 추진하는 등 유연한 개방성 정책이 남북공동으로 협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본다. 특히 남북이산가족 문제에 따른 상설면회소를 빠른 시일 내 개소하기로 한 것은 바람직한 성과라고 평가한다. 북한이 취약한 전염성 질병의 유입 및 확산방지를 위한 긴급조치를 비롯한 방역 및 보건·의료분야의 협력강화는 실질적인 관계진전차원에서 잘 된 것이다. 우리로서는 인도적인 사업으로 북한주민의 호감을 얻는 것은 통일분위기 조성에 유의미하다.

그리고 문화예술분야의 교류를 진전시킨 예술단의 교환공연과 2020년 하계올림픽의 공동진출과 2032년 하계올림픽의 남북공동 개최협력도 바람직하다고 평가한다. 과거 미국과 중공이 핑퐁이라는 운동을 매개로 외교관계를 정상화했던 것은 유명한 전례이기도 하다. 문화예술의 수준면에서 쌍방이 이데올로기를 강조하지 않는 관점이라면 개방적 진전측면에서 얻는 것이 더 많을 것이기에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셋째로 ‘군사적 긴장 완화 및 전쟁위험 종식’ 측면에서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 채택은 신중을 기해서 해도 전혀 문제가 없는 의제였으나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다’는 속담을 무색할 정도로 전격적인 타결이 됐다. 작금의 현실은 북한 비핵화가 본질적 의제인데 부수적인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를 채택한 것은 과연 불요불급한 것이었는가를 자문하게 된다. 특히 남북관계라는 것이 정권의 정치적 치적(治積)에 근거한 ‘선언’에 휘둘리는 것은 자칫 기울어져있는 남북군사력을 외면한 무리한 평화분위기 조성사업이 될 수 있다.

합의서를 들여다보면 군사분계선(MDL) 5㎞ 밖까지 포사격훈련 및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 전면중지, 최소 10㎞ 밖 비행체도 못 운행하고, 11월 1일부터 MDL일대서 육해공 군사연습 중지가 명시돼 있다. 11월 30일까지 JSA인근 지뢰제거, 공동유해발굴 명목으로 남북 간 폭 12m 도로개설도 합의했다. ‘해상적대행위 중단구역’도 80㎞로 발표했지만 확인결과 135㎞로 남측해상이 약 35㎞ 더 넓어서 인천 앞 덕적도해상으로 접근이 돼있다. 더욱이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통해서 군사훈련, 무력증강, 정찰행위중지 등 그야말로 안보의 자승자박(自繩自縛)을 한 것은 아닌지 국민적 우려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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