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유행가 가사처럼 때론 정처 없이 걷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정처 없음은 목적지가 없다는 뜻이므로 또한 쓸쓸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해서 이왕 걷는 것이라면 도달하고자 하는 곳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쓸쓸하지도 불안하지도 않다.

걷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가히 열풍이라 할 만하다. 전국 곳곳에 걷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하루가 멀다 하고 ‘걷기 좋은 길’이 생겨나고 있다. 올레길 둘레길 마실길 바우길… 길도 참 많다. 산이 있어 산에 오른다고 한 자도 있었고, 어차피 내려올 산 뭣 하러 힘들여 오르느냐는 이도 있다.

오르는 것은, 내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영영 내려오지 못할 산이라면 누구도 오르려 하지 않을 것이다. 걷는 것도 그와 같아서, 닿을 곳이 마땅히 있어야 길을 떠나는 것이다. 최종 목적지는 결국 첫 발길을 내디뎠던 집이기 마련이고 그래서 걷는 이들은 쓸쓸하지도 불안하지도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오르는 것은 경쟁하는 것이다. 높이와 경쟁해야 하고 다른 이들과도 겨뤄야 한다. 자신과의 싸움이라고도 말한다. 그래서 오르는 것을, 정복한다고도 한다. 잠시 머물다 내려 갈 뿐이지만, 그걸 뻔히 알면서도 정복했다 하고, 그래서 이겼다 여기고, 세상 다 얻은 듯 가슴 가득 자부심을 담는다.

걷는 것은 경쟁이 아니다. 남들과의 겨룸도 아니고 자신을 이기고자 하는 마음도 아니다. 빨리 가고자 하면 걷는 것이 아니다. 걷는 자는 그저 담담할 뿐이다. 오를 때는 결코 볼 수 없는 것들이, 걸으면 보인다. 키 작은 것들, 미세한 것들, 아름다운 것들이, 걷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걸음으로써 볼 수 있는 것이다.

걷는 것이 행복한 것은, 그렇다. 경쟁하지 않아도 되고, 걷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앉아 고단한 마음을 부려 놓거나 작은 것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 그것이 걷는 자의 행복이다. 처음부터 길이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걸음으로써 마침내 길이 열리고 그래서 누구나 길을 열 수 있다.

따라 나선 길도 길이다. 길 위에선, 걸을 수 있는 자라면 누구나 평등하다. 다만 걸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녹아 들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곧 축복이라는 것을, 그래서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 계절, 시 한 수 가슴에 품고 걸어 볼 일이다. 이성부 시인의 <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

이제 비로소 길이다/ 가야 할 곳이 어디쯤인지/ 벅찬 가슴들 열어 당도해야 할 먼 그곳이/ 어디쯤인지 잘 보이는 길이다/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가로막는 벼랑과 비바람에서도/ 물러설 수 없었던 우리/ 가도 가도 끝없는 가시덤불 헤치며/ 찢겨지고 피 흘렸던 우리/ 이리저리 헤매다가 떠돌다가/ 우리 힘으로 다시 찾은 우리/ 이제 비로소 길이다/ 가는 길 힘겨워 우리 허파 헉헉거려도/ 가쁜 숨 몰아쉬며 잠시 쳐다보는 우리 하늘/ 서럽도록 푸른 자유/ 마음이 먼저 날아가서 산 넘어 축지법!/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이제부터가 큰 사랑 만나러 가는 길이다/ 더 어려운 바위, 벼랑과 비바람 맞을지라도/ 더 안 보이는 안개에 묻힐지라도/ 우리가 어찌 우리를 그만둘 수 있겠는가/ 우리 앞이 모두 길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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