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로 읽는 역사 이야기] 독사에게 물려 죽은 여왕, 클레오파트라
[동물로 읽는 역사 이야기] 독사에게 물려 죽은 여왕, 클레오파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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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신현배 시인, 역사 칼럼니스트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하여 세 명의 아이를 낳았고, 사랑의 노예가 되었다. Cleopatra and triumvir Mark Antonius as Isis and Osiris illustration 1880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8.10.3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하여 세 명의 아이를 낳았고, 사랑의 노예가 되었다. Cleopatra and triumvir Mark Antonius as Isis and Osiris illustration 1880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8.10.3

기원전 51년 클레오파트라는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가 죽자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권력을 나눠 가지게 되었다. 아버지가 두 사람에게 이집트를 공동으로 다스리라는 유언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은 형제간이라도 나눠 가질 수 없나 보다. 3년 뒤 권력 다툼이 일어났는데 클레오파트라가 패배하여 나라 밖으로 쫓겨났다. 하지만 클레오파트라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반드시 왕위를 되찾겠다며 이집트와 시리아 국경 지대에서 군대를 일으켰다.

그 무렵 로마 제국의 명장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정적인 폼페이우스를 추격하여 이집트에 도착했다. 이 소식을 들은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를 자기편으로 만들어 왕위를 되찾기로 마음먹었다.

클레오파트라는 몰래 이집트로 숨어 들어갔다. 카이사르가 있는 곳은 병사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한 가지 꾀를 내었다. 시종에게 자신의 몸을 카펫에 둘둘 말아 카이사르에게 바치게 한 것이었다.

카이사르는 카펫을 펼쳤다가 깜짝 놀랐다. 그 안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이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 여인은 클레오파트라였다.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에게 첫눈에 반해 버렸다. 클레오파트라는 곧 카이사르의 연인이 되었고, 그의 도움을 받아 남동생을 쫓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는 이집트의 수도 알렉산드리아에서 함께 살았다. 두 사람은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클레오파트라는 그 아이를 ‘카이사리온’이라고 불렀다. ‘작은 카이사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클레오파트라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기원전 44년 카이사르가 로마의 원로원에서 암살을 당했기 때문이다.

로마의 최고 권력자 카이사르가 죽자 안토니우스․옥타비아누스․레피두스 등 세 사람이 로마를 셋으로 나누어 다스리게 되었다. 안토니우스는 지중해 동쪽을, 옥타비아누스는 이탈리아와 에스파냐를, 레피두스는 아프리카를 맡았다.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국 로마와의 충돌을 피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집트가 있는 지중해 동쪽을 맡은 로마의 최고 권력자 안토니우스를 유혹하기로 결심했다.

안토니우스와 만나기로 약속한 날, 클레오파트라는 금으로 장식된 호화로운 배를 타고 소아시아의 타르수스 항구로 갔다. 그리고 안토니우스를 배 안으로 초대하여 사치스러운 파티를 열었다. 클레오파트라는 귀에 달고 있던 진주 귀걸이에서 진주를 떼어 술잔에 떨군 뒤, 그 술잔을 단숨에 비워 안토니우스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녀는 안토니우스를 유혹하는 데 성공했다.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하여 세 명의 아이를 낳았고, 사랑의 노예가 되었다. 그는 클레오파트라와 그 아들에게 자신이 맡은 지중해 동쪽을 넘겨주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하기까지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로마 시민들은 크게 분노하여 원로원과 손잡고 안토니우스의 집정관 자리를 박탈했다. 그리고 옥타비아누스에게 8만 대군과 400척의 전함을 주어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 연합군과 전쟁을 벌이도록 했다. 옥타비아누스가 이끄는 로마 군은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을 무찔렀다. 이듬해 알렉산드리아에서 벌어진 또 한 번의 전투에서 패한 안토니우스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포로로 잡힌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의 살 길을 찾기 위해 옥타비아누스를 유혹하려고 했다. 그러나 38세의 클레오파트라가 젊은 옥타비아누스를 유혹할 수 없었다.

옥타비아누스는 클레오파트라를 쇠사슬에 묶어 로마로 데려간 뒤, 거리를 행진하게 할 계획이었다. 그는 클레오파트라를 만난 자리에서 그녀를 조롱하며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클레오파트라는 살아서 그런 모욕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죽음의 길을 택하기로 했다.

어느 날 밤 클레오파트라는 시종을 시켜 무화과 열매 광주리를 가져오게 했다. 그 광주리 안에는 독사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스스로 독사에게 물려 목숨을 끊었다.

 

어느 날 밤 클레오파트라는 시종을 시켜 무화과 열매 광주리를 가져오게 했다. 그 광주리 안에는 독사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스스로 독사에게 물려 목숨을 끊었다. The death of Cleopatra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8.10.3
어느 날 밤 클레오파트라는 시종을 시켜 무화과 열매 광주리를 가져오게 했다. 그 광주리 안에는 독사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스스로 독사에게 물려 목숨을 끊었다. The death of Cleopatra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8.10.3

◆ “클레오파트라는 정말 독사에게 물려 죽었을까요?”

클레오파트라가 독사에게 물려 죽었다고 밝힌 것은 그리스의 역사학자 플루타르코스다.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의 두 시녀와 함께 독사에게 물려 죽었다고 했는데, 이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는 클레오파트라와 두 시녀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는 학자들도 있다. 독사는 사람을 물 때마다 독을 뿜어내지 않는다고 한다. 방울뱀의 경우에는 한 번 물면 독을 거의 다 써서 두 번째 물 때는 독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 명이 한꺼번에 독사에게 물려 죽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거다.

독사를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좀 이상하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뱀을 두려워하여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어떻게 커다란 독사를 잡아 자기를 물게 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이 클레오파트라가 독사에게 물려 죽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클레오파트라의 시신을 살펴보았던 의사가, 그녀의 팔에서 뭔가에 물린 듯한 자국들을 찾아냈다고 증언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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