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법률상 용어로 입법불비(立法不備)라는 게 있다. 우리 사회에서 어떤 문제가 현안으로 등장해 악영향을 미치고 있어도 법률과 규정 등으로 제도화되지 않아 그에 대해 정상적으로 상응된 조치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국회와 정부가 미처 상정(想定)하지 못해 발생되는 일인데, 최근 사례를 본다면 가상화폐나 메르스(중동호흡증후군)에 대한 상응 조치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이다. 

가상화폐, 암호화폐가 시중에서 상시적으로 거래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가상화폐의 정의라든가 거래 등에 관해 내용들이 법률에 규정돼있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해 사회문제로 대두돼도 적절한 조치를 행하기 어렵다. 또 2년 전에 메르스 사태를 겪고도 효과적인 조치 등에 관한 내용들이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최근에 발생한 의심환자의 치료나 예방을 위한 국비 투입에 제한이 따르고 있다. 메르스 예방과 발생시 이를 수습하기 위해 정부에서 대규모 재정이 불가피한 상황에 있음에도 전염병에 대해서는 추가경정예산 편성 자체가 불가능 한 것이다. 가상화폐 거래의 적절성과 피해 예방을 위해서는 법에서 거래 등에 대해 자세히 규정돼야 하고, 메르스 등 전염병이 우리 사회에 확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필요시 정부가 추경 편성 기준 요건을 개정하는 등 입법불비를 해소해야 한다. 현재 추경 편성 요건은 ▲전쟁이나 대규모 자연재해 ▲경기침체, 대량실업, 남북관계 변화, 경제협력 ▲법령에 따른 국가 지출 등인바 태풍 피해에 대한 정부예산 지원은 가능해도 메르스 등 전염병에 대해서는 추경 편성 요건에서 빠져 있으니 적절한 사전 예방이나 사후 대책에 철저를 기할 수 없는 노릇이다.

입법불비, 제도불비라 하니 또 하나 있다. 지금 국회에서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의 예산정보 유출 사태를 놓고 여야가 대치 국면에 있다. 국회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인 심 의원이 한국재정정보원 재정분석시스템(OLAP)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분석해 지난달 27일 발표하자 기획재정부에서는 심 의원을 정보유출과 공개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검찰은 심재철 의원 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한바 있다. 그러자 한국당에서는 야당 탄압이라 나섰고 심 의원은 또 다시 갖고 있던 자료에서 한 가지를 또 꺼내 폭로했던바 이 역시 청와대와 관련된 내용이다.    

폭로 내용은 청와대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윤건영 국정상황실장과 송인배 정무비서관 등 261명이 회의참석수당으로 모두 2억 5천만원을 받았다며 그 내역을 발표했고, 이에 청와대에서는 즉각 반발했다. “해당 돈은 인수위원회도 없이 출범한 청와대가 당장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정식 직원 임용 전인 민간인 전문가를 대상으로 정책 자문단을 구성하고, 자문 횟수에 따라 규정대로 자문료를 지급한 것”이라고 하면서 심재철 의원이 불법적으로 취득한 미확인 정보를 바탕으로 무차별 폭로를 진행하고 있다고 유감을 표시한 것이다. 

청와대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에서 당선된 후 청와대 비서관 등이 정식 임명되기 전 1~2개월 동안 근무한 데 따른 수당 성격이라고 하면서 심 의원이 부정 수당 지급이라고 제기한 내용에 대해 감사원에서도 경비 편성 및 집행이 적정했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심 의원은 “임명 전에 일한 사람들의 월급을 챙겨주기 위해 형식적으로 자문위원회를 꼼수로 만든 것으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고 재반발한바, 이런 일들은 결국 급박한 기간 사정으로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했던 문재인 정부에서 일할 민간인 신분의 장차 비서관 등에 대한 보수였던 것이다. 

과거 대통령직 인수위가 설치됐을 때 인수위원으로 활동한 민간인이나 정부 출범 후 정식 비서관으로 임명받을 때까지 기간 동안 일하고도 보수를 받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따지고 보면 입법불비의 사례다. 문재인 대통령도 과거 노무현 정부 출범 전과 직후 정식으로 임명되지 않고 한두달 근무하던 시절에 급료를 받지 못했다. 이러한 일은 ‘앞으로 청와대에서 근무할 예정이니 큰 명예로 알고 보수를 받지 말아라’ 하는 말밖에 더 되겠는가. 청와대에서 임용 전 실제 근무 민간인에게 부담을 주는 명백히 문제가 있는 것이며, 제도화됐어야 마땅한 일이다.

오래전부터 문제가 됐지만 제도화되지 않아 직접적으로 보수를 줄 입장이 아니니 정책자문위를 구성하고 ‘자문위’ 방식의 수당 지급이라는 비정상적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러한 입법불비, 제도화되지 않아 문제되고 시빗거리가 되는 것은 결국 국정의 손실이요, 행정 낭비다. 국회가 열려 국민을 위해 국가적 대사를 논의해야 할 시기에 청와대 직원의 정식 임용기간 중 보수 성격의 수당문제, 작은 일로 여야가 논쟁중이다. 야당이 작은 트집을 잡아 국정을 주도할 생각이나 하고, 여당이 야당의원을 재갈 물리려 하면서 또 국회 피감기관인 정부가 국회의원을 고발하는 현실은 국민이 보기에는 한편의 코미디극과도 같다. 제발 정치권이 정신 차리고 꼼수가 아닌 정도(正道)로서 국민을 위해 정국 현안들을 잘 풀어나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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