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 (사)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소장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해제된다면 남북한은 전력망·철도·도로 등 사회간접자본과 광물 개발, 신규 산업단지 구축 등 동반성장의 호기를 맞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개방된다면 중국, 미국, 일본 등 주변 열강은 경쟁적으로 북한 지역 개발에 참여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이 개발의 중심에 서려면 남북한 경제협력에 대한 세심한 사전준비가 선행돼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이 북한을 감싸고돌아 북한 비핵화 과정이 꼬이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북한은 정치적 유대 및 경제협력을 강화해 오고 있다. 

중국은 지난 3월 북·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을 의식해 공개적으로 추진하지는 못하지만 훈춘 등 접경도시를 중심으로 경제협력, 대북관광, 농업부문 등 협력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200여개 중국 기업이 평양에서 열린 춘계국제상품전에 몰려들어 북한 공기업들과 농업, 전자, 기계, 식품, 일용품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협력을 모색했다. 또한 7월에는 구본태 북한 대외경제성 부상이 중국 대외연락부 및 상무부 관계자들과 접촉해 섬유 등 경공업과 철도, 전력, 에너지 등 인프라 구축을 위해 중국 기업과 합작을 요청했다고 한다. 

유엔과 미국의 제재 압박에 따라 돈줄이 막힌 북한은 중국 자본을 끌어들여 지하자원 개발을 계속해 오고 있다. 한국광물자원공사는 2016년 북한에 매장된 광물자원 잠재가치를 약 3200조원으로 평가한 바 있다. 그런데 북한이 지금까지 체결한 광산개발 계약 38건 중 33건이 중국기업과 맺은 것이다. 중국은 2014~2016년 3년 연속 북한 대외무역의 90% 이상을 점했고, 그중 광물 수출은 60%에 달했다. 최근 유엔 대북제재 감시단은 석유·석탄·무기·금융거래까지 전방위로 구멍이 뚫렸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유엔 조사관들은 북한이 지난해 부과된 석탄수출 금지 조항은 물론, 북한의 원유(연간 400만 배럴) 및 정유(연간 50만 배럴) 수입 상한선을 어겼으며, 중국 내에 유엔이 금지한 북·중 합작기업이 200개 이상 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관계 발전은 북미관계 진전의 부수적 효과가 아니라, 오히려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시키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그 시발이 바로 ‘9월 평양공동선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선언에서 양 정상은 한반도를 핵무기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나가고, 금년 내 동·서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갖기로 약속했다. 또한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하고, 서해경제공동구역 및 동해관광공동특구를 조성하는 문제도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미국과 유엔의 경제제재로 우리 정부가 이러한 대북 경협을 착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2차 북미정상회담의 길을 열었고, 트럼프 대통령 1기 임기 전인 2021년 1월까지 북한비핵화를 완결하는 토대도 만들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차제에 미국 정부도 북한비핵화와 평화적 한국통일의 초석이 될 남북경협 사업의 원만한 진행을 위해 대북제재를 일정 부분 순차적으로 해제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살얼음 위를 걸어 왔던 북한비핵화 문제는 물론, 평화통일의 물꼬도 트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제 북한은 경제면에서 더 이상 중국의 간섭이나 보호막의 테두리 안에서 머무를 것이 아니라 우리 한민족의 통일과 번영을 위해 적극적으로 우리 정부와 화합하고 협조해 나가야 할 시점에 와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