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독산성 성벽길 걸으며 권율장군의 지혜를 배우다
[쉼표] 독산성 성벽길 걸으며 권율장군의 지혜를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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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다본 오산의 명소 독산성 (제공: 오산시청)
하늘에서 내려다본 오산의 명소 독산성 (제공: 오산시청)

도성 지킨 ‘군사적 요충지’ 독산성

쌀로 말을 씻겨 왜군 물리친 세마대

가벼운 산책으로 역사를 만나는 곳

[천지일보=유영선, 이성애 기자] 가을로 접어드는 9월 중순. 오산의 대표적인 역사유적지로 유명한 독산성(禿山城)을 찾았다. 수원역에서 자가용을 타고 약 20분을 가면 경기도 오산시 지곶동 162번지 일대에 소재한 사적 제140호인 독산성과 세마대지(洗馬臺址)에 도달하게 된다.

차를 가지고 독산성 정상 근처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가파르고 협소한 산길이어서 운전에 자신이 없다면 산 아래 주차하고 걸어서 가도 괜찮을 듯하다. 천천히 걸어서 20여분 올라오면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를 소개하는 안내판을 마주하게 된다. 주변은 공원처럼 조성돼 있고 주차장이 구비돼 있다.

[천지일보=이성애 기자] 독산성 동문으로 들어서자 등장한 보적사(寶積寺)라는 이름의 사찰 ⓒ천지일보 2018.9.30
[천지일보=이성애 기자] 독산성 동문으로 들어서자 등장한 보적사(寶積寺)라는 이름의 사찰 ⓒ천지일보 2018.9.30

안내판을 따라 난 길로 발걸음을 옮기자마자 독산성 동문과 보적사(寶積寺)라는 이름의 사찰이 나온다. 보적사는 백제 아신왕 401년에 승리를 기원하며 창건됐는데, 처음 지었을 때 위치하고 있는 지역의 이름을 따서 세마사라고 불리어왔다. 보적사는 그 명칭에 재미있는 일화가 얽혀 있다.

옛날에 가난한 노부부가 쌀이 조금밖에 남지 않자 “굶어 죽느니 부처님께 공양드리자!”라는 마음으로 공양을 했다. 그 후 집에 돌아오니 곡간에 쌀이 가득 차 있어 보배로울 ‘보(寶)’, 쌀 ‘적(積)’자를 써서 ‘보적사’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천지일보=이성애 기자] 독성산에서 바라본 동탄 전경. ⓒ천지일보 2018.9.30
[천지일보=이성애 기자] 독성산에서 바라본 동탄 전경. ⓒ천지일보 2018.9.30

독산성 동문으로 들어서자 성안에 자리한 보적사 사찰이 눈에 들어왔고, 사방으로 펼쳐진 전경에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오산과 수원, 화성지역을 훤히 볼 수 있어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함을 안겨준다. 이날 흐린 날씨가 아쉬웠지만, 청명한 날에는 평택까지 보일 정도로 장관(壯觀)이다.

독산성은 독성산성이라고도 불리며, 총 길이가 1.1㎞이고 높이는 208m에 불과한 아주 낮은 산이다. 독산성은 본래 대머리산이라는 별명을 가졌으나 정조의 지시로 식목사업을 한 뒤 현재는 울창한 숲이 조성돼 있다. 주변 전경을 감상하면서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산성을 다 돌아보아도 한 시간 남짓하다.

[천지일보=이성애 기자] ⓒ천지일보 2018.9.30
[천지일보=이성애 기자] 독산성 남문의 모습. ⓒ천지일보 2018.9.30

독산성은 삼국시대(백제)에 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통일 신라와 고려 시대에도 지속적으로 이용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옛날에 선조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평탄한 오산지역에서 유일하게 높게 솟아 있는 이곳을 군사적 요충지로 사용했다. 산성을 둘러보니 정상부위는 평평한 데 비해 산세가 가파르고 험해서 독산성을 함락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천지일보=이성애 기자] 독산성 성벽길에서 내려다 본 주변 전경. ⓒ천지일보 2018.9.30
[천지일보=이성애 기자] 독산성 성벽길에서 내려다 본 주변 전경. ⓒ천지일보 2018.9.30

다만 산의 규모가 작고 물이 부족해서 많은 병력이 장기간 주둔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1953년 임진왜란 때 독산성에 물이 부족하다는 것을 안 가토가 이끄는 왜군은 이곳을 포위했다. 당시 2만명의 군사를 데리고 독산성에 진을 친 권율장군은 말을 끌고 산 위에 올라가 쌀을 이용해서 말을 씻기는 행동을 했는데 마치 그 모습이 물이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왜군은 독산성에 물이 많다고 생각해 퇴각했는데, 그 일화로 인해 세마산(洗馬山), 세마대(洗馬臺)라고 부르고 있다. 보적사 뒤편에 정자 하나가 있는데, 현판에 ‘세마대’라고 적혀 있다. 권율장군의 승전으로 군사적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 독산성은 여주 파사성, 용진 토성 등과 함께 도성을 방어하는데 중요한 근거지가 됐다.

[천지일보=이성애 기자] 독산성의 정상에 위치한 세마대. ⓒ천지일보 2018.9.30
[천지일보=이성애 기자] 독산성의 정상에 위치한 세마대. ⓒ천지일보 2018.9.30

독산성은 임진왜란 중인 선조 27년(1594)에 경기도 관찰사 유근이 백성들과 함께 4일 만에 고쳐지었으며, 임진왜란 이후 선조 35년(1602)에 방어사 변응성이 석상으로 다시 지었다.

정조는 수원성 축성과 함께 독산성과 세마대를 개·중건(1796)하고 세마대를 향로봉이라 불렀다. 독산성의 내부 시설물로는 성문 5개(동문, 남문, 암문, 서문, 북문)와 치 8개, 우물 1개, 수로 1개가 남아 있다.

독산성의 남문과 동문 사이의 성벽은 다른 곳보다 비교적 안전하고, 해도 잘 들어서 추억의 사진을 남기기에 좋은 지점이다. 또한 독산성은 현재 성곽 안쪽 구역에 대한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독산성 성곽 내 7만 5252㎡ 전 지역이 사적 제140호 문화재 구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천지일보=이성애 기자] 독산성 남문 근처에 있는 발굴현장 모습. ⓒ천지일보 2018.9.30
[천지일보=이성애 기자] 독산성 남문 근처에 있는 발굴현장 모습. ⓒ천지일보 2018.9.30

독산성은 성곽 둘레 3.6㎞의 안과 밖 15m씩 30m만(3만 7269㎡) 문화재 구역으로 지정되어 관리돼 왔다. 하지만 오산시는 2017년부터 성은 성곽뿐 아니라 내부까지 모두를 포함하는 종합유적임을 강조, 최근 경기도와 문화재청의 심의를 거쳐 성곽 내 전체 7만 5242㎡를 문화재 구역으로 설정하게 됐다.

완연한 가을로 접어드는 요즘, 독산성 성벽을 따라 걸으며 오산과 수원, 화성의 전경을 훤히 내려다는 보는 것도 지친 심신을 힐링하는 방법일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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