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원에서

김금숙

누군가
누군가가 자꾸만 
등 뒤에서 불타는 황금눈빛
술렁이기 시작하는
풍성한 소문
그대로 함몰하는
홍옥들의 서늘하도록 고운 치맛자락
아직 덜 익은 것들의
시퍼런 심장마다 무슨 신호처럼
일제히 꿈의 심지가 올라간다.

 

[시평]

한여름 장대같이 내리던 장맛비도, 30도를 웃도는 무더위도, 그리고 세찬 비와 함께 몰아치던 태풍도 묵묵히 견뎌내며 속으로, 속으로 자신을 키워왔던 과일들, 이제는 따가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마무리 속살을 익혀가고 있다. 속살이 튼실한 과일이 되기 위해 주렁주렁 매달려, 자신을 익혀가고 있는 과원(果園)의 풍경은 풍성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 그 과원에 들어가면, 누군가가 불타는 황금눈빛으로 술렁이기 시작하는, 그런 느낌이 자꾸만 등 뒤에서 다가오는 듯하고, 또는 풍성한 소문들이 저절로 함몰하는 듯한, 그런 느낌 다가온다. 술렁이는 불타는 황금눈빛으로, 스스로 함몰하는 풍성한 소문들로. 주렁주렁 과실이 익어가고 있는 과원, 그 한가운데 서면, 자신의 내면을 살찌우는 계절이 바로 가을임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내면을 살찌우면서, 아직은 덜 익은 것들은 덜 익은 대로, 아직 시퍼런 심장으로부터 결실에의 꿈, 그 꿈의 심지를 돋아 올려 내일의 결실을 향해 힘차게 뻗어나가고. 그래서 가을은 그 어느 계절보다도 더 내면적인 박진감으로 넘쳐나는 계절이 아니겠는가. 보이지 않는 힘으로 인해 내밀하게 스스로를 튼실하게 익혀가는 계절, 가을. 이 가을 한번쯤 자신의 내면으로 눈을 돌려보는 것, 또한 어떻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