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모 경기대 교수
일제강점기부터 경제개발 시대 아우르는 역사(驛舍)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1970~1980년대만 하더라도 자가용은 흔치 않았지만 서울역으로 모든 길이 통했다. 특히 민족의 명절인 설과 추석 연휴에 서울역의 진가를 발휘했다. 오랜만에 뵐 부모님 생각에 들뜬 사람들이 선물을 한 아름 안고 고향행 기차를 기다린다.

또한 서울역은 ‘서울드림’을 꿈꾸는 관문이기도 했다.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때 성공이란 꿈을 안고 상경했던 사람들에게 서울역은 자신의 이상에 한 발짝 다가서는 장소이기도 했다.

고속철도(KTX) 신설로 어느덧 ‘구’역사가 된 서울역이 시대와 호흡하기 위해 탈바꿈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20세기 내내 우리 민족과 함께한 서울역, 그 복원 이야기를 안창모 경기대 교수에게 들어본다.

“시대와 관계없이 철도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철도입니다. 물론 시대에 따라 식민지와 경제개발을 각각 상징하기도 했죠. 시대마다 주어진 역할이 다르긴 했으나 서울역은 국내 어느 교통수단보다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국내에 있는 기차역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철도 역할이 중요한 도시일수록 역의 규모가 크고 그렇지 않을수록 작다. 하지만 서울역은 우리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긴 장소다.

“1910년경 역을 비교했을 때 서울 남대문역보다 부산의 부산역, 신의주의 신의주역이 더 좋았죠. 그 이유는 일본 입장에서 부산역은 조선으로, 신의주역은 중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었기 때문이죠. 건물로만 가치를 따지면 목구조로 이뤄진 남대문역(현 서울역)은 보잘 것 없었을 것입니다.”

경인철도가 처음 뚫렸을 때 종착역은 지금의 서울역이 아닌 이화여고 근처 서대문역이었으며, 첫 경성역이었다. 현재 서울역은 당시 남대문역으로 목구조로 된 검소한 건축물이었다. 이후 남대문역은 증축공사를 1915년에 시작, 1920년에 완공됐으며 서울역으로 명칭이 바뀌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남대문에서 경성역으로 바뀐 후 위상은 높아졌다. 경성역은 ‘서양 역사주의 건축양식’을 도입해 당시 조선총독부·한국은행과 견줄 만큼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뽐냈다.

“많은 이들은 서울역이 바로크향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완벽한 바로크양식이 아닙니다. 역은 20세기 건축물이고 바로크, 르네상스 양식이 혼합됐고 붉은 벽돌과 철근, 콩크리트구조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굳이 건축양식을 말하자면 ‘서양 역사주의 건축양식’이라고 볼 수 있죠.”

여기서 ‘일본은 왜 식민지에 근사한 역을 건축했을까’라는 의문점을 품을 수 있다. 안 교수의 말에 따르면 일본과 유럽 식민관은 철저히 다르다. 유럽 식민지 정책은 생산이나 자원 등 경제적 이익 수단으로 삼았을 뿐 현지인들을 자국화시키지 않았다. 반면, 일본은 한반도도 자국이라는 것에 굳건한 믿음을 지니고 문화말살정책 등 직접통치를 강행했다.

“세운상가는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소개공지대(疏開空地帶)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공습 때 화재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종로에서 필동까지 50m 폭으로 비워 뒀습니다. 만약 일본이 한반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여기지 않았다면 불이 나든 무너지든 상관하지 않았겠죠. 당시 일본이 우리나라를 자기네 나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서울역을 근사하게 건축한 것입니다.”

서울역 복원과 관련해 대체로 찬성하는 분위기지만 한편에서는 식민지의 상징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허나 서울역이 1925년에 신축된 후 일제시대에 사용된 기간은 20년일 뿐 해방 이후 더 많은 시간을 우리 국민과 함께했기 때문에 일제 이후 추억을 살리는 것이 이번 서울역 복원의 참 의미다.

안 교수는 “조선총독부 철거를 앞두고 당시 정치인들은 오욕의 역사를 씻기 위해 없앤다고 말한 바 있다”며 “1948년 대한민국정부가 조선총독부에서 세워졌는데 일제강점기를 강조하는 사이 대한민국이 출발한 장소도 함께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해방 이후 서울역은 ‘성공’을 꿈꾸는 이들의 상징이었다.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1970~1980년대 이촌향도 물결을 이끈 주역이었다.

“일본이 서울역 건물을 지었다는 점은 중요치 않습니다. 경제개발에 대한 국민의 염원이 담긴 공간을 유지하겠다는 게 이번 복원의 참 의미죠. 그렇기 때문에 서울역은 생생한 기억을 지닌 현장이어야 합니다.”

실제 서울역의 물리적 공간은 지상과 지하를 합쳐 총 6611.57㎡이지만 많은 이들이 이보다 더 클 것이라고 기억한다. 이러한 이유로 안 교수는 물리적 공간과 인지 공간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건물만이 지닌 가치를 그대로 드러내려고 한다.

“서울역은 안과 밖이 모두 멋있는 건물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체험 공간으로 제공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건물을 숨 쉬게 하는 거죠.”

현재 구서울역 플랫폼은 살아있다. 이 때문에 역사(驛舍) 문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기차 시간에 맞춰 개찰구를 통과, 기차에 탑승하는 것보다 더 좋은 활용이 없다는 게 안 교수의 설명이다.

“해방 전후 누적된 시간을 서울역에 담아낼 것입니다. 플랫폼을 살리는 것은 사실 한국철도공사와 협의를 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언제든지 열차가 다시 다닐 수 있도록 공간을 살려 둘 것입니다.”

아울러 노숙자 문제와 관련 안 교수는 “서울역은 역사 기능을 인위적으로 없애면서 노숙자의 아지트가 돼 버렸다”면서 “공간이 다시 활성화되면 노숙자 문제는 상당부분이 해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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