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모두의 기쁨이었다. 지난주 정부 측으로부터 36년 만에 ‘군복무 중 사망’으로 인정받아 국립현충원에 안장키로 했다는 결정을 통보 받으면서 필자 친구의 유가족, 대학 ROTC 동기, 그리고 대학 합창반원들은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것이 마침내 이루어져 환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여러 정권과 대통령이 바뀌고,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죽음의 기억마저 점차 흐려졌으나 ‘결코 자살이 아니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오랜 진정과 투쟁을 해온 것이 기어코 결실을 맺었기 때문이다.

유가족 등은 지난 수십년간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야 했다. 군이라는 거대한 조직을 상대로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국방부, 청와대, 보훈처 등에 진정을 냈으나 번번이 퇴짜를 맞고 슬픔과 괴로움의 시간을 보냈다. 마치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진실을 바로 세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는 직접 겪어 본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른다. ‘군 의문사’에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국민권익위원장 앞으로 진정서를 내게 되면서였다. (본보 참조 2017. 7. 13 [스포츠속으로] 운동을 좋아했던 어느 소대장의 죽음)

진정서에는 친구가 M16 소총을 머리에 쏘아 자살한 것으로 당초 헌병대 조사는 발표됐으나 총탄이 들어가고 나온 구멍이 거의 같아 M16 소총이 의문시되며 다리 정강이와 눈자위에 상처가 난 현장을 목격했던 내용 등이 적혀 있었다. 아울러 그가 죽기 이틀 전 쓴 일기에 “나도 침묵을 지키면 동조자가 된다. 말해야 한다. 그에게 말했다. 최후통첩을 했다”라는 내용이 적혀있던 것을 사본과 함께 제출했다.

사실 6.25전쟁 참전 용사였던 친구의 아버지는 전쟁 기간 내내 현역으로 복무하며 화랑무공훈장을 수여받았으며, 아들을 잃은 슬픔 속에 지내다 2016년 타계해 동작동 현충원의 충혼당에 안장됐고, 친구의 형은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는 등 우리 사회의 안정적인 가정의 전형이었다. 그만큼 친구가 자살을 했다는 사실 자체를 유가족들은 결코 믿지 않았으며, 동기생 들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도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본보 참조 2016. 3. 22 [스포츠속으로] 스포츠기자의 길을 열게 해준 친구 아버지)

국방부는 국민권익위원회와 자체 조사 결과를 토대로 최근 심사를 통해 ‘군 근무 중 사망’으로 최종 결정했고, 이를 국민권익위원회에 통보했다. 군 복무 중 사망한 경우 세 가지로 처리하고 있는데, 첫째 전사, 둘째 근무 중 사망, 셋째 자살이나 사고사 등이다. 친구는 그동안 자살로 처리돼 있었다가 이번에 ‘근무 중 사망’으로 판정을 받았던 것이다.

친구는 1982년 9월 하순, 최전방 강원도 양구 모 사단 GOP 중화기 중대 소대장으로 근무하다 23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친구는 필자와 함께 서강대 ROTC 20기로 임관, 보병장교로 광주 보병학교에서 병과 교육을 마치고 임지로 부임했다. 필자는 공수부대를 지원해 서울 거여동 모 공수여단에서 근무했고, 그는 최전방 철책대대 소대장을 맡게 됐다. 서울 성동고 출신으로 고교 때 학교 야구부를 응원하러 자주 동대문야구장을 찾았던 인연으로 야구를 좋아했던 친구의 비보가 전해진 것은 프로야구 원년, 가을 야구가 한창이던 때였다. 잠실야구장에서 OB 박철순 투수가 괴력의 22연승 기록을 질주할 때, 그는 어느 날 새벽 최전방 철책 인근에서 싸늘한 몸으로 발견됐던 것이다.

친구의 장례식은 푸른 가을 하늘아래 화창한 햇살이 내려쬐는 날, 모교인 서강대 성당 메리홀에서 군 동기와 ROTC 후배와 유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깊은 애도 속에 열렸다. 필자는 장례식과 장지인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까지 동행하며 빛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친구의 넋을 위로했다. 2년 4개월의 군복무를 마친 30여명의 동기생들은 먼저 간 친구를 기리기 위해 십시일반으로 정성을 모아 1984년 그의 묘에 추모비를 세워주었고, 사후 30년인 2014년 30주기를 맞아 다시 새로운 추모비를 세워 추모행사를 갖기도 했다. 그동안 구천을 떠돌며 억울한 죽음을 호소했을 것 같은 친구의 영령이 곧 다가올 기일을 맞아 사필귀정으로 마침내 명예회복을 하고 이제야 편안히 영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친구가 국립현충원에 안장되는 날, 짧은 생을 살았으나 아름다운 추억을 남긴 친구의 영혼을 위로하며 조용필의 ‘친구여’를 불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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