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그리스에는 참으로 많은 신들이 있었다. 또 사람의 온갖 생각 즉, 설과 론이 우후죽순처럼 난무하던 시절 예수의 사도인 바울은 이들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神)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이 말은 너희들은 신을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으나, 의지해야 할 참 신을 알지도 못하고 마음만 간절할 뿐이라는 사실을 안타깝게 일깨우고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그 참 신은 바로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 즉,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었다.

또 당시 아덴(그리스 아테네) 사람들을 그렇게 종교성이 많게 한 까닭은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라고 한 그 말씀이 답이다. 이 증거는 경서의 내용을 인용한 것임을 밝히는 바이다. 그리고 이제 이천 년이 흘러 이 한반도에도 아레오바고 언덕에서 아덴 철학자들에게 사도 바울이 증거하던 그 복음의 씨가 일백이십 년 전 이 땅에도 뿌려졌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될 엄연한 사실이 있다. 우리 또한 뿌리 깊은 신앙의 굴레 속에서 신을 의지해 왔던 종교성이 많은 민족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토속신앙이자 민족신앙은 그저 그렇게 아덴 사람들같이 알지 못하는 신을 향한 신앙은 아니었음을 밝히고 싶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하늘에 제를 올리며 섬기던 민족이다. 하늘엔 하나님이 계시니 곧 하나님을 숭배하던 민족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어느 순간 신과 함께했던 영광은 우리의 허물로 인해 다시 발견되고 회복되고 광복되기까지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나눠지고 왜곡되고 감추어져 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천 년 전 바울은 계시를 받고 예수의 사도가 되기 이전까진 예수를 잡아 죽이기 위해 공모하고 혈안이 되었던 당시 최고의 율법학자 가말리엘의 제자요 종교지도자였다. 그러던 바울은 예수의 계시를 받은 후 자기의 생각과 교리를 배설물같이 버리고, 예수의 복음 증거자로 목숨을 다해 새로운 신앙의 길을 걸은 사도 중의 사도가 되어 오늘날 많은 신앙인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이제 여기까지 말을 하고 잠시 화두를 바꿀 것 같으면, 오늘날 예수를 구주로 믿고 또 그의 사도인 바울의 말을 따르는 오늘날 신앙인들의 믿음 가운데 절대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구원관이 있다. 바로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라는 구원관이다. 이러한 믿음과 구원관을 가진 이 시대 신앙인들에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예수의 사도인 바울의 말을 들어보자. 왜 들어야 하는가.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의 말씀을 깨달아 믿는 것이며, 석가를 믿는 것은 석가가 한 말을 믿는 것이며, 공자를 믿는 증거는 공자의 말씀을 깨달아 믿고 준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손에 경서를 들고 다니는 이 시대의 신앙인들은 들어보고 맞으면 맞다, 틀리면 틀리다고 분명히 해야 한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라고 하셨다. ‘…리라’라고 한 걸 보아 분명 앞으로 나타날 예언적 표현이다.

즉, 이천 년 전 초림 예수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아담 범죄 이후 원죄 유전죄 자범죄로 인간의 수명이 감소해질 때,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인류의 죄를 죄 없는 예수의 몸을 단번에 드림으로 그 죄가 사해짐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며, 두 번째 나타나심 즉, 예수 재림으로 말미암아 신앙의 궁극적 목적인 구원이 온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신앙인들이 두 번째 나타나신다는 약속인 재림의 신앙 안에 들어오지 않았음에도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 신앙인은 분명 거짓을 배워 거짓말을 하고 있든가 아니면 이 바울의 말이 거짓이든가 둘 중의 하나여야 할 것이다. 만약 이 바울의 말이 틀렸다면 이 경서는 왜 들고 다니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아니면 이 내용만 떼 내어 버려야 하는가. 어찌해야 하는지를 대답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신앙인들이 바울을 존경한다면 바울이 걸어온 길 즉,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핍박만 할 때와 계시를 받아 깨달은 후 걸었던 그 길을 오늘날 이 시대 종교인들에게 주문하고 싶은 것이다. 한기총 부기총 하더니 이젠 전기총까지 만들어 사람잡는 도구로 삼고 있다. 그리고 총을 들은 사냥꾼이 되어 죄 없는 하나님의 양떼를 죽이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제 제발 종교의 위대한 가치를 깨달아 이 시대 축복받은 땅, 축복받은 민족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기를 빌어볼 뿐이다. 말(言)에도 귀(耳)가 달려 있음을 명심하자.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