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중학교 3학년 소년병은 여름 햇볕이 뜨거운 참호에서 그리운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고막을 찢는 총소리로 귀가 멍멍했으며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엄습해왔다. 소년은 먼저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이 앞섰다.

-1950년 8월10일 목요일 쾌청.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소년은 반문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내 옆에서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빛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을 다니다 학도병으로 참전한 고(故) 이우근 학생. 당시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포항여중에 집결한 학도병 수는 71명이었다.

-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어머니,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어머님도 형제도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상추 밥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 키고 싶습니다.(하략)-

꼭 살아 돌아가 어머니가 해주는 상추쌈과 옹달샘 물을 마음껏 마시고 싶었던 학생은 끝내 전사하고 말았다. 부치지 못했던 편지는 시신 품속에서 발견 되었다.

정규군이 아니면서 전쟁에 끌려간 어린 학도병들은 이처럼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생존한 이들 가운데는 당시의 충격을 잊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세계 전쟁종식 평화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HWPL(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 이만희총재도 6.25 당시 학도병이었다. 이 총재는 전쟁 속에서 어린 전우들의 죽음을 목도했다. 당시를 회상할 때는 지금도 눈시울이 젖는다.

이 대표가 전쟁종식을 위한 세계운동을 착수한 배경에는 비극을 직접 체험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80세가 넘는 고령도 불구,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며 정상급 지도자들을 만나 전쟁종식을 호소하고 국제법 제정 결의를 주도했다.

최근 HWPL이 공개한 다큐동영상을 보면 눈시울을 젖게 만든다. 채 피지도 못한 어린 학생들이 수 없이 스러져간 비극의 순간을 감동적으로 담은 이 다큐는 ‘전쟁은 반드시 종식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던져주고 있다. 끝내 부치지 못한 고 이우근 소년 병사의 슬픈 사연을 떠 올리는 영상이었다.

18일 인천광역시에서 열린 HWPL의 ‘평화 만국회의 4주년 기념식’은 전쟁종식을 염원하는 진정한 세계인의 평화 제전이다. 인천을 비롯한 서울, 경기, 강원, 대전, 광주, 부산 등 국내 주요 도시와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호주, 일본, 아프리카 등 17개국에서 동시 진행되어 지구상 마지막 분단국가의 전쟁종식과 평화구축을 호소했다. 지금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지도자들은 만국회의 결의에 귀를 기울여야한다.

이들의 호소와 결의대로 전쟁은 종식되어야 하며 한반도에서 다시는 6.25와 같은 동족상잔의 역사가 되풀이 돼서는 안 된다. 엄마의 품속이 아직은 그리울 나이, 소년들이 끌려가 비참하게 죽는 전쟁은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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