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문재인 정부 출범 2년 차를 맞아 주요 대기업들이 앞 다퉈 대규모 투자와 고용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유례없는 고실업의 한파 속에서 그나마 대기업들이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와 재계에 따르면 최근 한 달 새 삼성·한화·GS·포스코 등 5곳이 공식적으로 밝힌 투자 규모는 향후 1~5년간 총 421조원으로 신규 채용 규모는 26만 5000명에 달한다. 투자 금액은 지난해 정부 예산(약 430조원)에 달한다.
KT도 향후 5년 동안 23조원을 투자해 2023년까지 인공지능(AI)·가상현실(VR)·클라우드와 같은 융합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 3조 9000억원, 네트워크 분야에 9조 6000억원, 정보기술(IT) 고도화 등에 9조 5000억원 등 총 23조원을 투자해 일자리 14만개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중소기업 지원도 강화하겠다고 언급했다. 5세대 장비 구축과 공급에 중소기업을 우선 참여시켜서 2조원대 시장을 만들겠다고 한다.
GS그룹은 앞으로 5년 동안 20조원을 투자하고 일자리 2만 1000개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삼성은 그룹사 가운데 가장 많은 액수인 180조원을 3년 동안 투자한다고 했다. SK그룹은 3년 동안 80조원, 현대차 그룹은 23조원, 신세계그룹은 9조원의 투자 계획을 속속 내놨다.
대기업에서 만든 일자리도 늘었다. 국내 매출 상위 10개 기업(공기업 제외)의 직원 수는 올해 2분기 34만 1086명으로 지난해 2분기보다 8274명(2.5%) 증가했다. 매출 상위 30대 기업으로 대상을 확대하면, 구조조정을 겪고 있는 조선·은행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이 직원 수를 늘렸다. 인크루트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의 올해 하반기 신규 채용 규모는 4만 4648명으로 지난해보다 5.7% 늘어날 전망이다.
나라 살림을 꾸리는 예산 확보 면에도 대기업의 역할이 커졌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17 회계연도 총수입 결산 분석’에 따르면 주요 세수 항목 가운데 법인세 증가액이 7조 1000억원으로 가장 컸다. 특히 상위 10대 기업에 대한 세수 의존도가 높아졌다. 이들이 낸 법인세는 2016년 9조 1403억원에서 2017년 15조 8115억원으로 73%나 늘었다. 전체 법인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17.5%에서 26.7%로 높아졌다. 법인세 납부 1위인 삼성전자의 납부액은 같은 기간 2조 4880억원에서 8조 2991억원으로 3배 이상 늘었다.
대기업의 과감한 투자와 신규채용은 신사업 등 미래 경영을 위한 선제 조치라고 한다. 굳이 다른 이유를 든다면 최근 고용 절벽과 경기 침체 우려를 감안한 정부의 주문에 맞춰 고육지책으로 대기업들이 대책을 내놓고 있는 것도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계는 정부의 각종 정책이 기업을 배려하기는커녕 개혁의 대상으로만 취급한다고 불만이다.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경영 환경 변화에 기업이 대응하게 도와주는 정책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오히려 기업을 옥죄는 법인세 인상, 최저임금 인상 등이 이미 이뤄진 데 이어 기업을 더 규제하는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등이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정부의 반기업 정서로 시장은 얼어붙어 있고.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까지 국내에서는 사업하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대기업이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것은 정권에 비위 맞추기라는 비판이 있지만 국가 전체의 소비나 투자 심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정부는 대기업의 투자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기업가 정신을 마음껏 발휘해서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히 개혁하고 기업의 역동적인 사업 환경으로 기업의 기를 살려 주는 친기업적인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기업도 발표만 하고 실제 실행을 안 한다면 오히려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대기업의 대규모 투자와 신규 채용 계획발표가 공수표가 되지 않게 위해서는 대기업 스스로의 책임이 강조된다. 또한 기업의 투자 및 고용계획과 실제 집행 실적을 자율공시토록 유도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