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소설은 사랑하는 딸을 납치범에게 잃고 복수와 용서 사이에서 흔들리는 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남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영위하던 레스토랑 사장 한선재는 나날이 커가는 딸과 아름다운 아내를 곁에 두고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납치된 딸 예은이가 결국 차디찬 시체로 돌아오면서 아내는 정신착란증에, 선재 자신은 죽음보다 두려운 분노에 사로잡혀 폐인처럼 하루하루를 보낸다. 예은이를 성폭행한 뒤 목을 졸라 살해한 박태수는 경찰에 붙잡히지만 선재는 그를 보며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살의에 짓눌린다.

선재의 가슴엔 세상을 향한 복수가 똬리를 틀고 그 칼날은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는 박태수의 딸 하늘이에게 향한다. 의도적으로 병원에 입원 중인 하늘이에게 접근한 선재는 ‘아버지의 친구’라는 묘한 관계를 설정해 놓고 복수에 가득 찬 매서운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이후 선재는 박태수가 자신의 레스토랑을 지을 때 일했던 일용직 인부였다는 사실을 어렵게 기억해내고 박태수를 추궁한다. 박태수는 사소한 사건에서 선재 가정이 안겨준 인간적인 모멸감 때문에 예은이를 노리게 됐다고 고하고, 선재는 온몸에 밀려오는 헛헛함에 젖어든다.

그일 이후 선재는 방향성을 잃게 된다. 하늘이가 가장 증오하면서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그 박태수가 했던 것과 똑같이 하늘이를 서서히 짓이겨놓겠다고 다짐한 선재는 하늘이를 업고 예은이가 쓸쓸하게 죽어간 장소에 다다르는데…

소설은 ‘죄’와 ‘사랑’을 이야기한다. 딸에게 제대로 사랑을 주지 못한 남자나 남의 딸을 앗아간 남자는 분명 죄인이다. 그리고 그 찬란한 어린 생명을 지키지 못한 우리 모두도 죄인이다. 하지만 작가는 ‘누가 죄인인가’라는 본연적인 물음에 머무르지 않는다.

딸을 잃은 남자나 타인의 딸을 죽인 남자 모두 한 아이의 ‘아버지’다. 그 확연한 진실은 영겁의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평행선을 달리는 두 남자는 끝내 서로의 세계를 응시할 수 있게 된다.

그 행위를 우리는 ‘용서’라고 부른다.

김민기 지음 / 은행나무 펴냄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