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내일이면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평양에 모습을 드러낸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벌써 세 번째이다. 지난 18년 동안 남과 북은 모두 네 번의 정상회담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한 번(2000년 6월), 노무현 대통령이 한 번(2007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은 집권 2년 차에 벌써 세 번째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난다. 다시 북행길에 오르는 대통령을 바라보며 우리 국민들은 과연 이번 회담은 뭐가 달라도 달라야 한다는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혹자는 적어도 이번 정상회담만은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에 한 번 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일갈하기도 한다. 틀린 말 아니다. 당연히 김정은 위원장이 오는 것이 순서이지만 잘못 채워진 남북정상회담은 줄곧 북한에 끌려다니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남북한은 14일 평양 정상회담(18∼20일)의 구체적인 일정과 의전, 경호, 보도 문제를 논의하는 실무회담을 열었다. 방북 경로는 서해 직항로 항공편으로 결정됐고, 선발대는 16일 가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불과 나흘 앞둔 시점이다. 북측은 어제 개성공단에서 열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 현장에 와서야 북측 소장에 전종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을 임명한 사실을 통보했다. 북측 일정에 따라 남북 협의나 행사가 진행되고 중요 사안을 당일에나 통보받는 남북 관계의 비대칭적 행태는 이제 관행화돼버린 양상이다.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은 벌써 세 번째지만 이처럼 벼락치기 실무 협의가 이뤄진 적은 없다. 경호팀을 비롯한 선발대가 이미 평양에 가서 실무 준비를 마쳤어야 하는 시점인데, 이제야 협의를 시작했다. 

북측은 정권 수립 기념일(9.9절) 행사를 치르느라 여력이 없어서라고 한다지만 이처럼 방북이 임박해 번갯불에 콩 볶듯 준비하는 정상회담이 차질 없이 이뤄질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간 두 차례의 평양 정상회담에서 우리 대통령은 북측의 일방적인 ‘깜짝 의전’에 마냥 끌려 다녀야만 했다. 북측은 대략의 일정 외엔 김정일이 언제 어디서 우리 대통령을 영접할지도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다. 사전 협의된 일정마저 번번이 변경하기 일쑤였다. 그런 과거의 관행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국가 최고지도자 간 정상회담은 사전에 세밀한 일정과 동선, 의제가 합의된 상황에서 이뤄져야 한다. 대외적 깜짝쇼로 보이는 이벤트도 사전에 합의된 것이어야지, 상대를 당황스럽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정상회담은 그 형식이 내용까지 결정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북한의 ‘일방통행식’ 태도를 용인하다 보니 핵심 의제마저 맞춰 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문 대통령이 북한의 핵실험장과 미사일시험장 폐쇄를 두고 “미래 핵을 포기하는 조치를 했다”고 밝힌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북한에 비핵화 실행을 촉구하기보다 북한을 대변하는 듯한 발언으로 김정은의 오만을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그렇지 않아도 북한은 벌써 정상회담의 이니셔티브 장악에 절취부심하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15일 “종전선언은 조선반도에서 핵전쟁 근원을 들어내고 공고한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출발점”이라며 미국에 종전선언을 거듭 촉구했다. 노동신문은 이날 ‘당치 않은 신뢰 타령으로 더러운 정치적 야욕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종전선언을 위해선 북한의 추가적인 비핵화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미국의 ‘보수 정객’들을 비난하며 이렇게 밝혔다. 신문은 “전쟁의 위험이 항시적으로 배회하는 속에서 우리가 핵 무력을 일방적으로 포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칼을 들고 달려드는 강도 앞에서 일방적으로 방패를 내려놓을 수 없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결자해지의 원칙에서 조선반도 비핵화를 위한 신뢰성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은 미국이며 종전선언에 제일 큰 책임과 의무를 지니고 있는 것도 다름 아닌 미국”이라고 주장했다. 어렵고 힘든 가시밭을 걸어가야  하는 문 대통령의 ‘평양 길’, 모두가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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