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아일랜드에서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전용기 내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출처: 뉴시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아일랜드에서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전용기 내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출처: 뉴시스)

추기경자문단, 전적인 연대 표시 “교황청, 해명 작업 중”
사제의 성(性)스캔들 불똥이 교황 사임 요구로까지 번져
비가노대주교 서한 폭로… 교황청 보혁갈등 또 수면위로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전 세계 12억명의 가톨릭 신도를 이끄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제들의 성(性) 스캔들 사태로 곤경에 처했다. 심지어 교황이 아동 성학대 사실을 알고도 은폐했다는 폭로가 이어지면서 가톨릭 내 보수세력과의 긴강 관계가 또다시 수면 위로 드러나 보혁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노코멘트, 침묵으로 일관하던 교황이 은폐 의혹과 관련해 조만간 공개적으로 해명을 내놓겠다는 입장이어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AP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교황청소속 9인 추기경자문단은 성학대 추문과 관련 교황에게 ‘전적인 연대’를 표시했다. 자문단은 “교황청은 잠재적이고도 필수적인 해명을 마련하는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의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77) 대주교는 8월 말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013년부터 시어도어 매캐릭 전 미국 추기경의 성범죄를 알고도 은폐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보혁 갈등이 촉발됐다. 고위 사제들과 가톨릭교회가 수십 년간 조직적으로 은밀하게 아동성학대를 은폐한 사실이 확인돼 충격을 안겼다.

여기에 비가노 대주교는 가톨릭의 정신적 지도자인 교황을 향해 메카톤급 직격탄을 날렸다. 비가노 대주교는 가톨릭 보수 매체들에 11쪽 분량의 서한을 보내 “자신이 2013년 교황에게 시어도어 매캐릭 전 추기경의 잇단 성학대 의혹에 관해 보고했다”고 주장, 교황이 성학대를 묵살하고 사실상 은폐했다고 비판했다.

은폐 의혹이 터지자 교황은 “한마디도 안할 것”이라며 즉답을 피해 의혹만 증폭시켰다. 비가노 추기경의 공세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불가침의 영역인 ‘사임’ 요구까지 공개적으로 하면서 갈등이 커지고 있다.

비가노 대주교는 “교황은 즉위 후 교회의 투명성을 누구보다 강조해 왔다”며 “이 문제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천명해온 그는 매캐릭의 학대를 은폐한 추기경과 주교들에 대해 선례를 보여야 하며, 그들 모두와 함께 사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BBC는 “비가노 대주교의 폭로가 공교롭게도 교황이 아일랜드를 방문해 아동성폭력을 거듭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다짐하는 시점에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교황이 가톨릭 고위층 내부의 보수주의자들로부터 조직적인 공격에 처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킨다”고 보도했다.

사제들의 성(性) 스캔들 사태의 불똥이 교황의 사임 요구로까지 옮겨 붙은 모양새다. 교황청 내 보수 세력들은 2013년 즉위 후 진보적 성향을 보여온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불만을 숨기지 않고 공세를 취해 왔다.

가톨릭 내 대표적 보수파인 레이먼드 버크 추기경은 지난 2014년 성과 결혼, 가정 등에 대한 가톨릭 윤리와 관련해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교황과 공공연히 각을 세웠다. 지난해 초반에는 이탈리아 로마 시내에 교황을 비방하는 벽보가 나붙어 파문이 일었다.

당시 추기경자문단은 성명을 내고 “우리는 최근의 사건들과 관련해 교황의 직무, 교황이 임명한 성직자들과 교황의 가르침에 대해 전면적 지지를 표명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에도 보수파 추기경 4명은 이혼한 사람에게도 성체 성사를 받는 길을 열어놓은 교황의 가르침에 우려를 내비친 성명을 발표하는 등 반기를 들었다. 교황은 인정하지는 않지만 동성애자들에 대해서도 열린 태도를 보여 왔다. 일각에서는 교황의 진보적인 성향과 행보가 전통적인 교리를 주장하는 보수파를 자극했고, 가톨릭 내 보수-개혁 대결로 확산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성추문 은폐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된 교황은 취임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추기경자문단과 만날 예정인 교황이 성학대 논란과 관련해 향후 어떠한 해명을 내놓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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