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샤인’ 통해 다시 주목받는 의병
‘미스터 션샤인’ 통해 다시 주목받는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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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션샤인’ 스틸. (출처: tvn)
‘미스터 션샤인’ 스틸. (출처: tvn)

 

“양복을 입고 얼굴을 가리면

우린 이름도 없이 오직 의병이오”

스스로 목숨 걸고 나라 구해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양복을 입고 얼굴을 가리면 우린 얼굴도 이름도 없이 오직 의병이오.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꼭 필요하오. 할아버님껜 잔인하나 그렇게 환하게 뜨거웠다가 지려하오. 불꽃으로. 죽는 것은 두려우나 난 그리 선택했소.”

연일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는 인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 ‘고애신(김태리 분)’의 대사다. ‘미스터 션샤인’은 신미양요(1871년) 때 군함에 승선해 미국에 떨어진 한 소년이 미국 군인 신분으로 자신을 버린 조국인 조선으로 돌아와 주둔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드라마다. 고애신은 양반의 신분임에도 일본에 짓밟히는 현실을 분개하며 조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총을 들고 의병으로 나선다.

그동안 ‘아나키스트(2000)’ ‘암살(2015)’ ‘밀정(2016)’ 등의 영화를 통해 의열단이 화제에 올랐다. 그러나 의열단에 앞서 드라마처럼 구한말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불꽃처럼 살았던 이름 없는 의병에 대한 이야기는 주목받은 적이 없다. 이에 그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우리가 소홀히 여겼던 의병을 조명해봤다.

의병부대 1908년, 양평. (출처: 독립기념관)
의병부대 1908년, 양평. (출처: 독립기념관)

◆스스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선 의병

의병(義兵)은 외적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울 때 뜻있는 국민이 스스로 군사를 일으켜 무장을 갖추고 목숨을 바쳐 외적에 대항해 싸우는 민병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은 한국에서는 고구려와 백제유민(遺民)의 국가부흥을 위한 의병투쟁부터 중국에서 투쟁한 항일의병까지 많은 의병운동이 있었다. 근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한 조선은 나름대로 독립국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힘없는 작은 나라 조선은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 국권을 지키지 못하고 일본에 침탈당하게 됐다. 그러자 조선 곳곳에서는 의병들이 일어나 저항했고 수많은 인사가 죽음으로 나라를 지키려고 애썼다. 대표적으로 임진왜란(1592년), 정묘호란(1627년), 을미의병(1985년), 을사의병(1905년), 정미의병(1907년) 등이 있다.

이들의 신분은 농민부터 노동자, 승려, 유생, 양반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오랜 역사로 인해 의병 특유의 정신이 조성된 이들은 죽음을 결심하고 과감히 전투하는 것을 본분이라고 여겼다. 의병 정신이 곧 한민족을 대표하는 전통 정신문화라고까지 믿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캡처. (출처: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캡처. (출처: tvn)

의병의 정신은 ‘미스터 션샤인’ 속 드라마에서도 나온다. 조선 침략 전쟁을 준비하는 일본군 ‘모리 타카시(김남희 분)’ 대좌는 “조선은 왜란, 호란을 겪으면서도 여태껏 살아남았어요. 그 이유가 뭔지 알아요? 그때마다 나라를 구하겠다고 목숨을 내놓죠. 누가? 민초들이. 그들은 스스로를 의병이라고 부르죠. 임진년에 의병이었던 자의 자식들은 을미년에 의병이 되죠. 을미년의 의병이었던 자의 자식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며 ‘이완익(김의성 분)’을 질책한다.

◆의병의 정신… 韓 근대사서 자칫 과소평가

의병의 기록은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권3)’, 군도부 ‘상공’에 보면 ‘임진왜변 당시 임금이 서행하여 나라 안이 텅 비고 적병으로 가득 찼다. 호령이 전해지지 않아 거의 나라가 없어진 지 한달이 넘었다. 영남의 곽재우·김면, 호남의 김천일·고경명, 호서의 조헌 등이 의병을 일으켜 원근에 격문을 전하니, 이로부터 비로소 백성들이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생겼다. 각 고을의 사족들이 곳곳에서 군사를 불러 모으니 의병장이라 칭하는 자가 무려 수백에 이르렀다. 이로써 왜적을 무찔러 나라를 회복하였으니 곧 의병의 힘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의병 신분증. (출처: 뉴시스)
의병 신분증. (출처: 뉴시스)

관의 지휘를 받지 않는다고 해서 의병이 무질서하진 않았다. 황해도 연안에서 의병을 일으킨 이정암은 의병 자원자의 성명을 ‘의병약서책(義兵約誓冊)’에 기록했다. 또 그는 ▲적진에 임해 패해 물러가는 자 참수 ▲민간에 폐를 끼치는 자 참수 ▲주장의 명령을 한 때라도 어기는 자 참수 ▲군기를 누설한 자 참수 ▲논상할 때 적을 사살한 것을 으뜸으로 하고, 목을 베는 것을 그다음으로 함 등 8개 군율(軍律)을 정했다. 이는 의병의 성격을 잘 말해주는 부분이다.

일본군에 체포된 의병. (출처: 독립기념관)
일본군에 체포된 의병. (출처: 독립기념관)

한국 근대사 서술에서 의병이 자칫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의병은 유생들에 의해 주도됐으며, 전투구호가 반근대적이고 봉건주의적이었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의병의 역사적 의의를 살펴보면 주도층인 유생과 농민은 일제 침략자와 그에 협력한 소수의 집권자에 대한 최대의 저항자로서 항일민족세력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구실을 했다. 또 3.1 운동, 그리고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줄기차게 전개된 농민운동이 모두 의병을 비롯한 항일운동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많이 알려진 의열단의 김원봉과 안중근 등 국내외 항일운동자도 의병에서 시작됐다. 이들은 일제 침략 최대의 희생자인 한국 농민의 분노와 한(恨) 등 의병의 정신을 간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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