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다음 주면 평양의 하늘에 다시 대한민국 대통령의 전용기가 날게 된다. 민족의 명절 추석을 목전에 두고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 사이 정상회담이 열리는 의미는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비핵화와 남북관계 진전도 중요하지만 10월 말경 잠정적으로 약속한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우리 정부는 평양 가을정상회담을 종전선언으로 가는 ‘담대한 발걸음’이라고 이야기한다. 트럼프 대통령 참모들은 평화협정에 부정적이다. 미국 워싱턴의 일반적 기류는 북한이 평화협정을 체결할 만큼 만족스러운 양보를 보이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한국 보수층 또한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보수층의 대통령 비판 목소리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임기 동안 한반도 평화정책을 이끌어가기 위해 문 대통령은 더 많은 중도층과 보수층의 지지가 필요하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문제와 관련해 이들의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했다. 보수층은 햇볕정책을 대북 유화정책이라 비판했고 결국 이명박 정권은 이를 대부분 폐기했다. 문재인 정부도 참여정부와 유사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중도층, 넓게는 보수층까지의 지지가 절실하다.

평화협정을 놓고 미국 내 강경파와 온건파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이제 그 범위가 서울 대 워싱턴으로 확대되고 있다. 종전선언은 북한에 대한 양보라는 것이 미국 강경파 입장이다. 대북 제재는 70년 동안 작동해왔다. 한반도는 평화협정 없이도 평화로웠다. 사실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지속적으로 훼손시켜온 것은 미국이나 남한이 아니라 북한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협정은 평화에 관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 오히려 체제인정으로 보는 것이 옳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북한 체제는 한국전쟁의 정당한 결과로 인정될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서는 종전에 대한 남북 동의가 미국과 중국의 동의와 함께 선행돼야 한다. 이렇게 되면 남한과 북한은 동등한 주권국가로 이웃하게 될 것이다.

이는 엄청난 진전으로 북한이 원하는 바다. 현실적으로 북한이 남한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뒤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남과 북은 평화협정을 통해 동등한 주체가 될 것이다. 남과 북의 동등성이 협정으로 인정되면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로 한다는 헌법 제3조의 정당성이 훼손될 수 있다. 북한도 영토에 관해 같은 주장을 하고 있지만 북한은 모든 부분에서 실패와 부족을 경험하며 제 한 몸 가누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므로 현 상황이 변화한다면 영토 문제에 있어서 남한이 그 주체가 될 것이다. 만약 평화협정이 체결된다면 이와 관련해 북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된다. 영토에 대한 대한민국 헌법을 고려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위해 실제로 개헌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평화협정은 결정적으로 주한 미군과 주한 유엔군 사령부의 정당성을 약화시킨다. 전쟁이 종식되고 남북이 각각 독립된 체제로 인정된다면 미군과 유엔군 사령부가 한국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 대한민국 진보층은 미국의 역할 축소와 ‘한 국가 두 체제’ 결론에 안도할지도 모르지만 보수층은 물론 중도층도 이에 대한 불안감을 감출 수가 없다. 미국도 꽤 불편한 기색이다. 보수층은 진보진영이 북한에 너무 많은 양보를 할 것이라고 늘 우려를 표명해왔고, 올 해 주요 일간지 사설에 그 불안감이 잘 반영돼있다. 미국 또한 전체주의적인 북한이 변화 없이 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평화협정을 우려한다. 비판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이러한 큰 변화를 성사시키기에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중도층의 지지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보수층은 너무 염려함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 한반도에서 평화프로세스 외에 북한을 변화로 끌고 나올 유인책은 없기 때문이다.

오는 18일부터 2박 3일간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게 되면 종전선언과 핵 시설 리스트 신고 교환 같은 비핵화 협상은 역시 북미 간 정상 간에 풀어야 할 문제라는 것이 더욱 확실해지게 될 것이다. 특히 지난 6월 1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백악관을 방문해 김 위원장의 1차 친서를 전달한 직후 취소됐던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살아났던 것처럼 이번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에도 북미정상회담을 연내에 개최하자는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있을 가능성이 크다. 비핵화는 미국과 북한이 당사자이지만 우리 대한민국 대통령의 중재 없이는 어렵다는 것이 이미 지난 5월 제2차 판문점 통일각 정상회담을 통해 입증됐다. 평창에서 시작된 한반도의 봄을 견인하는 견인차는 당연히 대한민국이며 문재인 대통령이다. 9월의 가을 하늘 아래서 다시 만나는 남북 정상은 굳이 평창의 초심으로 돌아가 새롭고 획기적인 아젠다들을 합의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새로운 이정표들을 제시하기 바란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