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정부가 데이터 규제혁신과 투자를 대폭 확대하기로 하면서 빅데이터 산업의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빅데이터를 잘 활용하면 기업들은 맞춤형 제품과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고 의료계에서는 각종 질병의 원인과 전파 경로, 대응 방법을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민간뿐만 아니라 정부나 공공기관에서도 행정 서비스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소위 ‘개·망·신’법이라 불리는 개인정보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에서 데이터 활용을 지나치게 규제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개인정보보호법은 당사자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수집·활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금지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의 정보통신망법은 통신망상에서 개인의 정보 보호와 통신 서비스를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규제한다. 금융위원회의 신용정보법은 금융거래 등을 할 때 개인 신용정보를 오용하거나 남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한다. 개인정보 문제가 이슈화될 때마다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법을 강화하다 보니 규제 때문에 개인정보가 포함된 데이터는 사용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에 정부는 빅데이터 산업을 국가 주력산업으로 육성하기로 했다. 당사자를 특정할 수 없도록 처리돼 있는 ‘익명정보’의 경우에는 개인정보 보호 대상에서 배제해 당사자의 동의 없이 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업종 간 보유한 개인정보를 결합할 수 있게 해 통신과 금융, 통신과 의료 등 영역별 데이터가 융합돼 새로운 서비스 개발에 이용할 수 있게 한다. 통신과 금융·의료 등이 결합한 융합산업의 발전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이동통신사도 통신비 납부내역을 은행 대출이나 보험 상품과 결합하고 T맵 등 위치정보를 분석해 금융 상품에 활용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동안 정부 여당과 진보진영이 개인정보와 관련해 규제 완화보다는 보안을 강화해왔다는 점에서 이번의 규제혁신방침은 파격적이라는 평가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8월 31일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열린 관계부처 합동 ‘데이터 경제 활성화’ 규제혁신 현장방문 행사에서 “대한민국은 인터넷을 가장 잘 다루는 나라에서 데이터를 가장 잘 다루는 나라가 돼야 한다”며 “데이터의 적극적인 개방과 공유로 새로운 산업을 도약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데이터 규제혁신의 목표는 데이터의 개방과 공유를 확대해 활용도를 높이고 신기술과 신산업,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정부는 내년에 데이터 산업에 총 1조원을 투자해 데이터경제를 위해 핵심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전문인력 5만명을 양성하며 데이터 강소기업 100개를 육성한다.

정부가 발표한 데이터 경제 활성화 전제 조건은 소위 ‘개·망·신’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보호법)의 개정이다. 데이터 활용을 위해 강력한 개인정보보호 법적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그러나 규제 혁신을 천명한 후 시민사회단체들이 공동 논평을 통해 개인정보 주체의 권리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보호해야 한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개인정보 규제 완화에 대한 진보진영의 반발로 향후 국회통과가 불투명하다. 문 대통령이 앞서 강조했던 인터넷 전문은행 은산분리 규제 완화 법안이 아직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상황이다. 업계는 대통령의 강력한 규제혁신 주문을 기대했지만 현재의 정부안은 빅데이터,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데 여전히 충분하지 않는데 이마저 시민단체들의 반발을 정부가 극복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품고 있다. 전문가들도 여전히 포지티브 규제방식이며 네가티브 규제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류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문명사적 전환기를 맞고 있다.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석유가 성장의 기반이었다면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미래 산업의 ‘원유’는 바로 데이터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퍼스트 무버 국가가 되기 위해선 빅데이터를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혁파하고 공공데이터를 개방해야 한다. 산업별 빅데이터 전문센터도 육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진보단체의 거센 반대운동 등 시민사회단체의 반대를 극복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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