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1월 1일 창간 이후 지금까지 변함없이 북한을 대변하는 매체로 평가되는 ‘로동신문’의 1면. 북한교회연구원 유관지 원장이 로동신문의 2002~2017년 종교 관련기사를 조사한 결과 북한은 미국과 선교사에 대해 증오심을 갖는 것으로 분석됐다. (출처: 뉴시스)
1945년 11월 1일 창간 이후 지금까지 변함없이 북한을 대변하는 매체로 평가되는 ‘로동신문’의 1면. 북한교회연구원 유관지 원장이 로동신문의 2002~2017년 종교 관련기사를 조사한 결과 북한은 미국과 선교사에 대해 증오심을 갖는 것으로 분석됐다. (출처: 뉴시스)

유관지 북한교회연구원장, 北 대변하는 ‘로동신문’ 분석

2002~2017 16년간 종교 관련 기사 428건… 감소추세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북한에서 발행되는 신문을 통해 북한의 종교에 대한 인식을 가늠해볼 수 있는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끈다.

북한교회연구원 유관지 원장은 북한 조선로동당의 기관지인 ‘로동신문’에 2002~2017년까지 게재된 종교 관련 기사를 분석한 결과를 월간 ‘기독교사상’ 9월호에서 밝혔다.

1945년 11월 1일 창간된 ‘로동신문’은 지금까지 변함없이 북한을 대변하는 매체로 평가된다.

유 원장의 조사에 따르면 2002~2017년까지 16년 동안 로동신문에 실린 종교 관련 기사는 모두 428건으로 조사됐다. 기사 건수는 2010년대 들어서 크게 줄었다. 매년 30~50건 정도의 종교 관련 기사가 실렸지만 2014년엔 8건, 2015년 10건, 2016년 22건, 2017년 5건에 그쳤다.

유 원장은 로동신문이 북한의 중심 통치기구인 로동당의 입장을 대변하고 북한의 이익을 위한 매체라는 점을 알리며 우리가 아는 종교기사는 거의 실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즉 그렇기 때문에 종교와 관련해 등장한 기사들은 그만큼 분석할만한 가치를 갖고 있었다.

전체 기사 중 가장 많은 소식은 북한 종교계에 대한 소식이 아닌 남한 종교단체들의 소식이었다. 로동신문에 실린 남한 종교단체들의 기사 중 상당수가 종교인이나 종교단체가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거나 성명을 발표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기사가 전체 종교 관련 기사의 4분의 1인 106건이었다.

조사 기간 로동신문에 제일 많이 등장한 종교인은 북측 종교인사가 아닌 남측 한상렬 목사였다.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측 목회자인 한 목사는 여중생 장갑차 사망사고 당시 방미투쟁단 단장으로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한 목사는 당국의 허가 없이 2010년 6월 12일 평양을 방문해 8월 21일 판문점을 통해 돌아올 때까지 70일 동안 북한에 머물렀다. 로동신문은 한 목사가 북한에서 했던 일을 18건의 기사를 통해 자세히 보도했다.

한 목사는 평양 도착 열흘 뒤인 6월 22일과 떠나기 사흘 전인 8월 18일 두 차례에 걸쳐 기자회견을 했는데, ‘로동신문’은 6월 22일에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그의 발언들을 다음 날 신문에 자세히 보도했다. 그리고 그가 평양을 떠난 후에도 남한에서 재판을 받은 일과 그 밖에 그와 관련된 일들을 2010년에 25건, 2011년에 5건 등 총 30건의 기사로 보도했다. 2010년 8월 22일에는 한상렬 목사 관련 기사가 하루에만 3건, 다음 날에도 4건이 실렸다. 그러나 2011년 12월 6일 이후 ‘한상렬’이라는 이름은 로동신문에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다음으로 많이 등장한 종교인사는 천도교의 오익재와 류미영이다. 오익재는 남한에서 천도교 제24대 교령을 지냈다. 1997년 8월 입북해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과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고문을 맡았다. 이 기간 로동신문에는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 삼가감사드립니다(2002년 1월 2일)’ 등 오익재가 김정일에게 보낸 편지 성격의 글 다섯 편이 실렸다.

오익재의 직함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이란 직함을 사용했다. 글 가운데 종교적인 내용은 없었다. 특히 2007년 8월 14일에는 ‘한울님의 나라에서 보낸 10년을 더듬어보며’라는 글이 거의 전면 가까운 분량으로 할애됐다.

류미영은 남한의 고위장성 출신으로 외무부장관과 천도교 제7대 교령을 지낸 최덕신의 부인이다. 류씨는 1986년 입북해 천도교 청우당 중앙위원회위원장을 비롯해 여러 직책을 가졌던 인물이다. 북한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는 성명을 종종 발표했다. 북한에서는 각종 주요 행사의 참석자 명단에 나타나는 이름의 순서가 권력의 서열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류씨의 이름은 정부요인이 사망했을 때 장례위원으로 이름이 몇 번 올라갔는데 그 순서가 빠른 편에 속했다. 일테면 2008년 10월 28일 사망한 로동당 정치국 위원 박성철의 장례 위원 66명 중 20번째로 그 이름이 올랐다. 장성택은 35번째, 김양건은 36번째에 이름이 올랐다.

반면 조선그리스도교련맹(조그련) 위원장을 지낸 강영섭 목사의 경우 이름이 등장하는 빈도가 매우 낮았다. 그가 2012년 1월 21일 사망했을 때에도 로동신문은 보도하지 않았다. 강 목사는 조그련 위원장 외에 최고인민회의 상임임위원 등 여러 직책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익재와 류미영이 사망했을 때에는 격식을 갖춘 부고가 실렸다.

조그련 현 위원장인 강명철 목사의 이름은 2013년 9월 22일 세계교회협의회(WCC) 대표단이 방북했을 당시 만남을 보도하며 처음 등장했다. 로동신문은 남한에서 매년 열리는 문익환 목사의 추모행사도 거르지 않고 보도했다.

로동신문은 러시아정교회 정백사원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보도했다. 정백사원의 착공식, 준공식, 준공 5돌‧10돌 등을 기념해 방북하는 러시아 정교회 대표단을 빠짐 없이 보도했다. 종교시설 착공식이었지만 부총리, 외부성 부상(차관), 러시아 대사가 모두 참석했다.

유 원장은 “좀 지나치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로동신문의 정백사원 관련 기사들을 살피면 정백사원은 종교시설이면서 동시에 제2의 러시아 대사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고 평가했다.

로동신문에는 북한의 불교단체와 관련한 기사는 별로 없었다. 불교관련 기사는 모두 23건 등장했는데, 이 가운데 6건은 일본 불교대표단의 방북사실을 보도한 내용이었다. 나머지는 사찰 관련 기사들이었다. 사찰 관련 기사는 ‘개성 령통사 복원락성식 진행(2005년 11월 2일)’ 기사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문화재로서의 사찰을 강조하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특히 통치자(김정일)가 사찰을 방문해 문화재로서 잘 관리할 것을 당부했다는 점을 반복해서 부각했다. 남한에서 사찰의 총 책임자가 주지스님인데 반해, 북한은 ‘관리원 OOO동무’라는 표현을 썼다.

유 원장은 “종교단체 대표단이 해외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하고 귀국하는 기사를 종종 볼 수 있었다. 종교단체들 가운데는 조그련 출국과 귀국 소식이 가장 많았다”면서 “하지만 최근에는 그런 기사가 사라졌다. 다른 채널을 통해 알게 된 조그련의 최근 동향도 로동신문에서는 전혀 포착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또 유 원장은 “로동신문을 통해 북한이 미국과 선교사들에 대해 극도의 증오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다”며 “북미관계가 점차 개선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변화될지 궁금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유관지 북한교회연구원장은 이번 분석을 위해 북한 로동신문에서 종교용어가 들어가 있는 기사를 무조건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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