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 아우프슈테헨, 경계를 허물어야 더 커진다
[정치평론] 아우프슈테헨, 경계를 허물어야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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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병 정치평론가 

 

혼돈과 변동의 유럽정치에서 무려 13년이나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는 독일 메르켈 총리, 그의 ‘정치적 상징’과도 같았던 ‘무티 리더십(Mutti Leadership: 엄마 리더십)’이 너무 과한 탓일까. 아니면 ‘무티 리더십’이 변질돼 그 생명력을 다한 것일까. 아무튼 요즘 메르켈 총리는 상당한 위기 국면을 맞고 있다. “따뜻하고 포용력 있는 엄마가 다 해줄게!”라고 외치던 그의 목소리는 이제 독일에서조차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상징이 무너지면 신뢰가 무너지고 신뢰가 무너지면 지지기반까지 무너지는 것은 정치의 상식이다.

무티 리더십은 2015년 발생한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과정에서 결정타를 맞았다. 그렉시트의 파국은 막아야 한다며 세계적 여론이 형성됐지만 메르켈 총리는 파국 직전의 그리스를 더 강하게 압박했다. 결국 그리스는 구제금융 신청 후 장장 8년의 세월을 고통으로 보내다가 최근에야 겨우 분위기를 일신하고 있다. 당시에도 ‘무티 리더십’의 이면은 너무도 냉혹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런 와중에 유럽으로 유입되는 아프리카 난민 문제는 메르켈 총리를 낭떠러지로 내몰았다. 메르켈은 일찌감치 ‘난민 포용 정책’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유러존의 혼선과 졸속 대책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었고 급기야 대연정이 붕괴될 상황까지 치달았다. 최근 국경 지역에 ‘난민 환승센터’를 만들겠다고 타협하면서 가까스로 대연정 붕괴는 막았지만 메르켈의 정치 행보는 여전히 불안하고 위태롭다.

아우프슈테헨(Stand Up)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 한계가 독일 전역으로 확산되자 주변의 프랑스나 오스트리아, 스페인 등과 마찬가지로 독일에서도 신생정당이 그 틈새를 치고 나오는 현상이 벌어졌다. 지난해 극우정당으로는 처음으로 독일 의회에 3당으로 입성한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그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임기응변식의 포퓰리즘 정책을 비롯해 노골적으로 신자유주의 노선을 표방한 이 정당에 독일 유권자들의 마음이 쏠렸다는 것은 기성 정치에 대한 실망과 변화에 대한 욕구 외에는 달리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변화의 욕구가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독일이 처한 위기를 극우 정당이 풀기에는 독일사회가 이미 너무 높은 수준에 있다는 점이 한계다. ‘깜짝 돌풍’은 가능하겠지만 ‘극우 노선’으로 독일의 집권당을 꿈꾸기에는 독일 국민들이 너무 높은 곳에 있다. 메르켈에 대한 실망이 ‘독일판 마거릿 대처’를 꿈꾸는 알리체 바이델(Alice E. Weidel)에 대한 관심으로 가기에는 무리라는 뜻이다. 극우는 이미 경계선에 갇혀 고립돼 있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 대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 생긴 것이다.

바로 이 때 독일 좌파 진영이 주도하는 ‘새로운 대안운동’ 성격의 정치운동이 시작되고 있다. 기존 좌파당(DIE LINKE) 공동 원내대표인 자라 바겐크네히트(Sahra Wagenknecht)가 ‘아우프슈테헨(Aufstehen: Stand Up)’이라는 이름의 정치운동체를 본격적으로 출범시킨 것이다. 독일 정치의 양대 블록인 보수와 진보라는 낡은 경계선을 허물고 민생 문제 해결에 최우선의 무게를 두겠다고 밝혔다. 작지만 거대한 비전을 내세운 것이다. 전통적인 좌파 가치에 바탕을 두되 특정 이념이나 특정 정치세력에 매이지 않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급부상한 AfD에 대한 대립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노선에 대한 강력한 반대 입장과 함께 AfD의 정치적 확장을 저지하는 데 당분간 총력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아우프슈테헨은 유럽의 여러 신생정당과 마찬가지로 인터넷과 모바일을 홍보의 적극적 수단으로 삼고 있다. 지지자는 누구든 자신의 이름과 이메일, 주소만 입력하면 회원이 될 수 있도록 가입절차를 간소화 한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그리고 지난 8월에 개설한 홈페이지를 보면 아우프슈테헨의 출범 배경과 비전 그리고 독일의 변화를 갈망하는 주요 인사들의 글과 동영상이 많이 올라와 있다. 벌써 회원에 가입한 지지자들이 1만여명을 훌쩍 넘어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새로운 정치운동체로서는 순조로운 출발인 셈이다.

아우프슈테헨을 이끌고 있는 바겐크네히트는 최근 독일 사회의 극우화 경향을 지적하면서 동시 독일의 민주주의 위기와 경제 양극화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한 기자회견에서 “독일의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40%는 20년 전보다 순소득이 줄었다”며 더 이상 독일 민주주의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럽을 주도하고 있는 독일이지만 정작 국민들은 기성 정치와 메르켈 목소리에 왜 귀를 기울이지 않는지를 이렇게 간명하게 설명한 것이다. 아우프슈테헨의 이후 활동이 시선을 끄는 이유라 하겠다.  

그러나 아우프슈테헨도 여전히 신생정당 또는 신생 정치운동체의 한계를 그대로 답습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특히 조직 내부의 갈등과 아직 뿌리 내리지 못한 핵심 가치 그리고 거대 정당 틈에서 살아남기 위한 정책적 대안과 인재 발굴 등은 난제 중의 난제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들도 역시 ‘포퓰리즘 정당’이라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다. 기존 거대정당의 장막을 걷어 내고 정치의 새로운 대지 위에 국민들이 바라는 좌표와 가치 그리고 그 성과물을 국민의 손에 쥐어 주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은 정치운동체에 불과하지만 아우프슈테헨이 과연 독일 정치의 새로운 희망을 일궈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정치는 희망적이다. 천하의 메르켈이 위기로 내몰리는 시점에서 극우 정당이 깜짝 돌풍을 일으키자 이에 맞서는 새로운 정치운동체가 독일의 자존심을 지켜내고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독일 정치가 이미 진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이름도 ‘일어서라(Aufstehen)’이다. 과연 독일 정치가 다시 더 크게 일어 설 수 있을지 아우프슈테헨의 활약에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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