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서울시 금천구 가산동에 있는 한 아파트 앞 지반이 침하되고 도로가 붕괴되는 안전사고가 발생했다. 주민 200여명이 불안에 떨고 있다. 동사무소 등 인근 임시대피소에 지내는 사람도 있고 근처 숙박업소에서 임시 거처하는 사람도 있다.

구청 측은 큰 비로 인근 공사장 흑막이벽이 무너져 도로가 침하된 것이라면서 별일 아닌 듯이 말하고 있다. 원인이야 어떻든 싱크홀이 생긴 것만큼은 분명하다. 가로 30m, 세로 10m, 깊이 6m에 이르는 국내 최대 규모다. 비가 쏟아진다고 해서 공사장 인근 도로나 지반에 싱크홀이 생길 수밖에 없다면 날이면 날마다 싱크홀이 생기게 될 것이고 대형 교통사고와 인명 사고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원인을 밝히고 책임을 분명하게 지우기 위해서는 검경의 엄정한 수사가 있어야 한다.   

유성훈 금천구청장은 지난달 9일 현장을 방문하고 “주민피해 최소화를 위해 공사현장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겠다. 현장지도와 단속반 운영 등 실효성 있는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구청장이 다녀간 뒤 주민들이 우편을 통해 민원접수까지 했음에도 도로 붕괴 사고가 날 때까지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 직무태만이자 직무유기이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공사 현장 인근의 아파트 주차장에 지반 갈라짐, 침하 등이 우려된다’며 공사중단과 안전진단을 요청하는 민원을 지난달 21일 금천구청에 우편으로 보냈다. 구청 측은 민원을 접수한 민원여권과는 다음 날 환경과로 넘기고 환경과는 6일이나 지난 30일에야 건축과로 넘겼다고 말한다. 30일 일과가 끝날 무렵 넘겨받은 탓에 그 날 처리 못했다고 한다. 

이 말을 그대로 믿는다고 하더라고 왜 환경과는 6일 동안 민원을 묵혔는가 하는 의구심이 남는다. 공사 중단을 요구한 것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건축과로 넘겼어야 할 민원이다. 지난달 21일 민원 제기 이전에도 여러 차례 민원을 접수했지만 부서끼리 서로 핑퐁만 하면서 세월을 보냈다는 증언도 있는 만큼 진상이 정확히 파악돼야 한다. 

구청장이 현장에서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까지 하고 긴급성 민원이 제기됐음에도 6일 동안이나 처리되지 않은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당연이 구정을 책임지고 있는 구청장이 져야 한다. 건축과 책임 또한 크다. 담당 부서로서 민원이 없더라도 안전이 문제되는 상황이 발생하는지 파악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의 안전은 어딜 가나 위태위태하다. 특히 건축할 때는 물론 지어진 건물로 인한 안전은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부산 사하구에서 발생한 ‘기우뚱 오피스텔’ 사건은 건축 관련 적폐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건축인허가부터 관리감독과 건축 관련 법률의 문제까지 드러낸 사건이다. 이번 금천구 도로 붕괴 사건도 이와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지자체가 인허가권은 가지고 있지만 관리감독을 할 전문성은 확보하고 있지 못한 문제가 있다. 법적으로도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구청은 관리감독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기관이라기보다는 행정 민원을 처리하는 곳이라 부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일단 인허가가 나면 사실상 공무원의 손을 벗어나게 되고 민간이 알아서 하는 구조다. 사고 개연성을 높이는 징후가 보여도 안전진단을 정확히 할 수 있는 권한이 미약하고 예산도 없고 안전진단 능력도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사고가 예비돼 있다고 봐야 한다. 

건축과와 관련 공무원의 문제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나라를 나라답게 운영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대한민국의 문제다. 국회와 정부가 나서야 하는데 정부와 국회는 안전 혁신을 해낼 능력을 상실한 집단 아닌가 싶다. 

세월호 이후 안전을 소리 높여 외쳐왔지만 안전은 제자리걸음이다. 정부와 국회의 책임이 크지만 국민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 주권자가 나서지 않으면 근본적인 ‘안전혁신’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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