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역사 이야기] 인물 (1)
[사진으로 보는 역사 이야기] 인물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이번에 소개되는 사진들은 동학농민운동, 갑신정변 등 역사의 격변기에 그 중심이 되었던 인물들의 모습이다. 고종황제와 순종, 덕혜옹주로부터 을사늑약에 분개해 자결한 민영환 그리고 을사늑약을 체결한 민족의 매국노, 을사오적의 한 명인 이완용의 부인으로 알려진 조씨의 사진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조선 말기의 문신 민영환(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8.9.6
조선 말기의 문신 민영환(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8.9.6

조선 말기의 문신 민영환

1905년 11월 17일 일제는 대한제국 정부 각료들을 총칼로 협박해 ‘을사늑약’을 강제 체결했다. 일제의 이 강압적이고도 일방적인 조약에 비분강개해 자결을 택한 조선 말기의 문신이 있었다.

바로 계정(桂庭) 민영환(閔泳煥, 1861.7. 2~1905.11.30) 선생이다. 선생은 1861년 7월 2일 서울 견지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문약(文若), 호는 계정이다. 흥선대원군의 처남이자 군무사 경리당상으로 신식 군대인 별기군을 창설한 민겸호가 선생의 부친이다.

민겸호는 민치구의 아들로 민태호, 민승호와 형제간이었으며, 민승호는 명성황후의 부친인 민치록의 양자였다. 따라서 선생은 명성황후의 친정 조카뻘이 되기도 한다. 뒤에 선생은 큰아버지 민태호에게 입양됐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수학한 민영환은 1877년 동몽교관이 되었으며, 이듬해 17세의 나이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1887년에는 예조판서로 승진, 1888년과 1890년 두 차례에 걸쳐 병조판서를 지냈다. 이후 형조판서, 한성부윤, 독판 내무부사를 지냈으며, 1895년 8월에는 주미전권대사에 임명됐지만 명성황후 시해 사건으로 일제 침략에 대한 분노를 참을 수 없어 부임하지 않고 낙향한다.

1896년 4월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돼 러시아황제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참석차 3개월 동안 러시아에 머물 때의 경험과 이후 또 한 번의 세계일주(영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6개국)를 통해 서구 여러 나라의 선진 문물을 본 민영환은 귀국 후 서구의 근대식 제도를 모방해 정치, 군사 제도 등을 개혁할 것을 주장했다. 사진은 민영환이 자결하기 전 찍은 사진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