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우리나라의 트레이드마크인 정보통신 일등국가, ICT 강국이 무너지고 있다. 금세기 들어 우리는 ‘산업화는 뒤졌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란 슬로건을 내걸고 정부 주도로 국가사회 정보화(수요)와 정보산업 육성(공급) 연계한 정보통신정책을 강력 추진했다. 그 결과 초고속통신망 보급률과 속도 1위, 인터넷 보급률 1위, 전자정부 1위 등 각종 정보화 지표에서. 세계 유래가 없는 성과를 달성했다.

또한 한국 ICT는 세계를 놀라게 한 혁신의 역사였다. 1980년대 전전자교환기(TDX) 국산화, 1996년 1월에는 CDMA를, 2005년 11월에는 와이브로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2015년 11월에는 음성LTE(VoLTE)를 세계 최초로 이동통신 3사가 연동했다. 정보산업 분야에서 반도체와 스마트폰 1위를 달성하며 후진국은 물론 선진국도 부러워하는 ‘ICT 강국’을 만들었다. 세계 정보통신시장에서 최신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을 시험하는 최적의 테스트 베드로 찬사를 받았다. 아울러 ICT는 우리나라의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한강의 기적을 잇는 경제 성장을 견인차 해 왔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던 ICT가 힘을 잃고 세계 시장에서 서서히 퇴보하고 있다. 온갖 규제로 혁신 열기와 산업 역동성은 떨어지고 신산업은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기존 주력 산업은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미·일과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우리 ICT는 선진국을 따라잡기는커녕 후발주자에게 추월당하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과 이를 받은 기업 노력이 합쳐지면서 ICT 혁신축이 대륙으로 이동하고 있다. 세계 최대 모바일 반도체 기업인 미국 퀄컴의 스티브 몰렌코프 최고경영자(CEO)는 “5G 시대에는 중국 IT 기업들이 애플과 삼성전자를 무너뜨리고 스마트폰 업계의 정상에 올라설 것”이라고 단언했다. 미국 이동통신산업협회(CTIA)도 “현재 5G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국가는 중국”이라며 “중국은 통신 장비뿐만 아니라 원천 기술도 대거 육성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한 준비도 뒤지고 있다. 정부는 ICT 융합을 기반으로 미래 자동차, 드론, 에너지 신산업, 바이오헬스, 스마트공장, 스마트시티, 스마트팜, 핀테크 등 8대 신성장 동력 분야를 선정했지만 각종 규제와 새로운 신산업이 전통산업과 충돌하면서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다. 내국인 대상 숙박공유가 불가능하고 전 세계 유일의 원격의료 금지 국가가 되는가 하면 휴대폰으로 손쉽게 혈당을 측정할 수 있는 혁신적 제품인 당뇨폰도 각종 규제로 허가도 받지 못하고 시장에서 사라지고 있다.

우리의 ICT 산업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에 따르면 우리나라 ICT 산업 생산액은 2016년 424조 7000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3.1% 감소했다. 2010년 18.2% 성장률을 기록한 이후 내리막이 시작돼 2~4% 성장률을 유지하다가 결국 마이너스 성장률로 주저앉았다. 신산업 전망도 밝지 않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023년 우리나라 4차 산업혁명 ICT 융합 기술력이 중국에 역전될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이 2023년 첨단 소재와 컴퓨팅 기술에서 한국을 추월하고 사물인터넷(IoT), 신재생에너지, 로봇, 증강현실(AR)에서도 우리나라를 앞설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가 발표하는 세계혁신지수(2016)에서 한국은 75.4점으로 31위이다.

ICT 강국이 무너지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대로는 4차 산업혁명 성공은 물론이고 경제 성장도 장담할 수 없다. ICT가 무너지면 대한민국의 희망도 사라질 수 있다. 정부와 산업계가 힘을 합치고 지혜를 모아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정부가 주창하는 혁신 성장도 튼튼한 ICT 경쟁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늦었지만 혁신 성장을 위한 지렛대로 ICT 산업 활력을 다시 제고해야 할 때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ICT라는 기반 위에 연결, 융합, 지능화를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따라서 통신망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자율주행차와 드론은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의료는 보건복지부처럼 칸막이로 나눠 있는 부처 간 장벽을 허물고 협업해서 대대적인 규제 개혁에 나서야 한다. 기업들의 태도 변화도 시급하다. ICT는 속도 경쟁이다. 혁신 상품 출시 등에 투자를 확대하고 발 빠르게 시장에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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