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이 지난달 28일 본지와 만나 페미니즘의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8.24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이 지난달 28일 본지와 만나 페미니즘의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8.24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인터뷰

“페미니즘 열풍, 그간 여성이 겪은 부조리·억울함 터져 나온 것
공교육 시스템 안에서 서로 평등한 존재란 점 배울 수 있어야”

[천지일보=명승일 기자] “성소수자, 이주민, 난민, 아동, 청소년, 노인, 심지어 동물과 자연까지….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목소리가 작거나 약한 사람의 입장을 대변하는 게 페미니즘이라고 봅니다. 페미니즘도 모든 소수자를 포함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은 페미니즘이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조언해 달라고 하자, 이런 입장을 밝혔다. 김 소장은 지난 8월 28일 천지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페미니즘을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를 향한 조언도 내놨다.

그는 “우리 사회가 귀와 마음을 더 열고,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하다”면서 “여성이 개인적 아픔과 고통을 갖고 ‘징징대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 성별에 따른 차별적 구조가 있다는 점을 말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것을 공감할 수 있는 자세로 나아갈 때 성평등이 실현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관심이 커진 페미니즘에 대해 김 소장은 켜켜이 쌓여 왔던 여성운동의 결과이자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강남역 살인사건, ‘미투운동(#MeToo, 나도 당했다)’, 안희정 사건 등 다양한 계기를 겪으면서 여성이 겪은 부조리하고 억울했던 일이 터져 나온 것”이라며 “구조적인 차원의 사회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걸 깨닫고 개개인의 모임이 더욱 커졌기 때문에 운동이 폭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 여성운동이 극단적 성향을 보인다는 지적에 대해선 “극단적으로 가게끔 만들고 있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김 소장은 “아무 일도 없었는데 다짜고짜 과격한 방식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과격한 운동을 할 수밖에 없게끔 귀를 계속 닫고 움직이지 않는 기득권층의 반응이 더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여성을 억압하는 법·제도를 가진 정부, 종교, 남성 등에 대한 과격한 표현은 저항의 언어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페미니즘이 남성을 배제한다는 주장에 대해 김 소장은 왜 그런 운동 방침이 생겼는지부터 고민해봐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시위하는 곳에 남성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건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무섭고 두렵게 만들었으면 집회하는 현장에 오지 말라는 말을 할까 돌아봐야 하는 거죠. 일상생활에서 여성도 남성처럼 안전하고 편안한 사회를 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김 소장은 다만 “어떤 운동이든 그 운동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뜻을 함께하는 지지자들을 더 많이 결집시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여성운동 역시 뜻을 함께하는 남성 지지자와 함께할 때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남성중심주의, 가부장제와 싸우며 남성도 교육하고 설득하며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이제 남성이 참여할 수 없는 집회를 넘어서서 성별에 상관없이 모두 함께 갈 수 있는 페미니즘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생물학적 여성만 참여할 수 있다는 조건에서 더 심각한 문제는 성소수자(트랜스여성)를 배제하겠다는 의도 때문이라고 했다. 김 소장은 “성평등 운동은 남성중심주의, 가부장제를 흔들 수 있는 운동으로, 성소수자와 여성이 함께하는 페미니즘을 할 때 더 큰 힘을 모을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여성과 달리 남성은 페미니즘을 놓고 ‘여자도 군대를 가라’ ‘남자가 역차별당하고 있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이를 두고 김 소장은 문제를 제기할 대상을 잘못 짚었다고 했다.

“남성이 군대문제 등을 얘기할 땐 여성을 상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국가가 불러서 군대에 간 겁니다. 그렇다면 국가에게 문제제기를 해야 맞는 거죠. 남자가 일을 더 많이 한다는 주장도 사실 노동문제, 경제문제, 노사관계문제에요. 문제제기를 할 대상을 잘못 짚은 셈이죠.”

김 소장은 또 “사회는 여성을 ‘얌전해야 해’ ‘조신해야 해’ ‘집안일을 잘해야 해’라며 여자다움의 박스에 가두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사회에서는 남성도 ‘남성다움’이란 박스에 갇힌다”며 “남성은 그동안 과도하게 짊어졌던 의무감과 책임감을 내려놓을 때 나답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마지막으로 “페미니스트에 대한 오해·편견이 실린 가짜뉴스와 여초 사이트, 남초 사이트를 통해 페미니스트를 접할 것이 아니라, 유치원 때부터 공교육 시스템 안에서 남성과 여성은 평등한 존재란 점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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