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엄한 예(禮) 갖춘 건축 양식… 왕이 친히 제례 올려

▲ 종묘는 1963년 1월 18일에 사적 제125호로 지정됐으며 총면적이 43만 4877㎡나 된다. 정전은 국보 제227호로 역대 조선왕조의 왕․왕비 신주가 모셔져 있는 유교 사당이다. (사진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종묘는 역대 조선왕조의 왕과 왕비 신주가 모셔져 있는 유교 사당이다. 단청을 입힌 건물이 없고, 대문의 현판이 없는 것은 그만큼 경건한 곳이기 때문에 건물을 지을 때 신중하고 겸손한 자세를 갖췄음을 짐작할 수 있다.

종묘 정문을 들어서면 세 갈래로 나뉜 돌길이 있는데 길은 정전으로 이어진다. ‘어도(御道)’는 왕이 다니는 길로, 이 길은 양쪽보다 가운데가 조금 솟아있으며 거친 돌로 만들어졌다.

왕은 어도의 가운데 길로 다니지 않고 옆길을 이용했는데 혼이 다니는 가운데를 귀하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거친 돌을 이용한 것은 조심해서 걸으라는 의미와 조상의 혼령을 만나러 가는 길이니 경건한 마음으로 밑을 살피며 걸으라는 의미가 있다.

이 길은 수십 미터 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이는데, 이것은 한국적인 것임을 단번에 알 수 있게 한다. 절의 대웅전도 한 번에 보이지 않고 한참을 둘러서 가야만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숙실은 왕이 제례를 지내기 전에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기 위해 들렸던 곳으로 어숙실 입구에도 왕과 조상신의 동선이 갈라지는 어도가 있다.

정묘의 정전은 목조 건물로는 가장 길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증축된 정전은 3번의 증축이 있었는데 이는 기단 부분을 보면 계단을 옮긴 흔적이다.

정전에는 19명의 왕과 30명 왕비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역대 왕조를 모신 곳이므로 근엄하고 장중한 규모에 반복적인 기법을 사용하고 경건한 사당이라 여겨 단청을 하지 않았다.
▲ 종묘제례 중 헌작하는 장면. 헌작은 제사 때에 술잔을 올리는 것이다. (사진제공: 문화재청)

한편 종묘는 건물뿐만 아니라 제례도 중요하게 여겼다. 종묘제례는 중요성을 인정받아 제례악과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됐다.

종묘제례는 당시 나라의 큰 제사로서 조상을 추모함과 동시에 통치자에게 초월적 권위를 안겨주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도 매우 중요했다.



◆ 용어설명
기단: 건물을 건립하기 위하여 지면에 흙이나 돌을 쌓고 다져서 단단하게 만들어 놓은 곳이다. 건물의 습기나 침하를 막을 수 있으며 한 층 더 높이 쌓아올려 건물을 돋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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