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차 연극배우의 하루. ⓒ천지일보 2018.9.3
10년차 연극배우의 하루. ⓒ천지일보 2018.9.3

연습 시간 외엔 온종일 아르바이트

새벽 2시에 하루 일과 마쳐

“알바 안 하면 생활 유지 안돼”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지방 출신이라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가면 선배가 이끌어주고, 후배가 밀어주고 해서 다 해결될 줄 알았어요. 막상 올라와보니 많은 난관에 부딪히더라고요.”

훤칠한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가 인상적인 박지훈(가명, 33, 남)씨는 다양한 작품의 크고, 작은 배역을 맡아 연기하는 10년 차 배우다. 아침밥을 먹지 않는 박씨는 보통 오전 8시에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한 뒤 9시에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연습실로 간다. 박씨에 따르면 큰 공연 연습을 할 땐 식비나 연습비가 나오지만 대부분 나오지 않는 게 현실이다.

연습은 10시에서 오후 2시까지 진행되지만 이후에 진행될 다른 공연 연습에 참여해야 한다. 박씨는 “오후 1시까지만 연습에 참여한다고 사정을 미리 이야기했다. 이제 다른 연습실로 이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공연 연습실은 대학로에서 대중교통으로 약 1시간 이동해야 하는 방배동에 있다. 그나마 서울권이라 이동시간은 왕복 1시간. 서울 외 지역에서 공연 연습을 할 경우 왕복 4시간을 길에서 보내야 한다.

고픈 배를 부여잡고 오후 2시께 두 번째 연습실에 도착했다. 박씨는 “다행히 이 연습실엔 밥을 조리해서 먹는 시설이 갖춰져 있어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 뒤 밥을 먹었다. 이후 열정적인 연습이 밤 9시까지 이어졌다.

박씨의 일과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대학로 인근에 사는 박씨는 집 근처 바(Bar)에서 칵테일을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박씨는 “사장님들이 가게를 여는 시간도 아니고 닫는 시간도 아니라 이 시간대에 아르바이트를 잘 안 구하신다”며 “같은 공연계 친구들도 저처럼 연습을 하고, 아름아름 통해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안 그러면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호소했다.

동네의 작은 가게지만 칵테일을 만들어 주고, 적적한 사람들의 말동무가 돼주는 일이기 때문에 어렵진 않다. 사실 아르바이트의 정식 근무시간은 7시부터 새벽 2시까지다. 그는 “사장님께서 예쁘게 봐주셔서 10시에 출근하도록 해주셨다”며 “그러다보니 다음 날 리허설이 있거나, 공연 때문에 일이 생겨도 내 사정을 말하고 빠지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나마 이 일은 쉬운 편이다. 전에 새벽 택배 일 할 때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2~3주 공연을 쉬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가게를 정리하고 박씨가 퇴근해 집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2시 반. 무대에서 조명을 받는 배우들은 화려하지만 현실에선 아주 고달프다. 배우라는 직업이 비정규직이다 보니 항상 생활고에 시달리고 이 작품 끝나면 다른 작품을 찾기 전까지는 늘 조급한 마음으로 산다. 이렇게 준비해 무대에 올린 뒤 받는 돈은 50만~100만원으로, 자취생이 서울에서 생활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그간 박씨가 제작사로부터 돈을 받지 못한 적은 없지만, 이쪽 업계에선 공공연한 일이다.

박씨는 “왕성하게 활동하던 작가, 배우분이 생활고 때문에 자살한 뉴스를 보면 저희는 같은 업계 일을 하니 남의 일 같지 않다”며 “예술인 복지법이 제정돼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예술인들의 생활이 힘든 건 사실이다. 혜택을 받기 위해 신청하는 방법도 이해하기 어렵고, 서류도 이해하기 너무 복잡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신청을 한 뒤 탈락된 경우 정확한 피드백이 돌아오지 않아 다시 신청해도 또 탈락한다”며 “복지법이 개선된다면 생활고가 시원하게 해소되진 않아도 어느 정도 안정은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양한 사람들한테 혜택을 주기 위해 실질적으로 필요한 복지법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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