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칼럼]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사암 정약용 생애 고찰(4)
[박관우 칼럼]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사암 정약용 생애 고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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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1762년(영조 38) 마재에서 출생한 정약용(丁若鏞)은 불과 4세라는 어린 연령에 부친으로부터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6세에 연천현감으로 부임하는 정재원을 따라서 관사에서 생활하였는데, 7세에 ‘산(山)’이라는 제하의 제목으로 직접 시를 지을 정도였으니 이는 타고난 천재성이 아니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여기서 사암이 불과 7세라는 어린 연령에 직접 지은 시 ‘산’의 전문을 소개한다.

소산폐대산(小山蔽大山)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는 것은

원근지부동(遠近地不同) 거리가 멀고 가까워서 다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시를 보고 정재원(丁載遠)이 “분수(分數)와 소장(消長)에 밝으니 자라면 틀림없이 역법(曆法)이나 산수(算數)에 능통할 것” 이라 했다고 전하는데 특히 사암이 훗날 주역(周易)에 조예가 깊었던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가히 정재원의 선견지명(先見之明)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으니 과연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한 사암은 7세에 홍역을 앓았는데 이러한 전염병으로 인하여 사암도 그 후유증으로 눈썹 한가운데가 나누어지는 흉터가 생겼으며, 눈썹이 세 개인 사람이란 뜻의 삼미자(三眉子)의 유래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니 사암의 재치있는 식견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사암은 6남 3녀의 자녀중에서 대부분이 홍역(紅疫)을 앓다가 세상을 떠나는 불행을 겪기도 하였는데, 1797년(정조 21) 곡산도호부사로 재임시에 의학 전문서인 마과회통(麻科會通) 12권을 저술하게 된 중요한 계기는 어려서 자신의 홍역을 치료하여 주었던 몽수(蒙叟) 이헌길(李獻吉)과의 만남이라 할 수 있다.

마과회통은 당시 홍역에 관한 국내외 책들중에서 새로운 이론과 치료법을 밝혀 놓은 것인데 특히 마과회통 보유(補遺) 2에 두창의 치료방법을 자세히 소개한 종두심법요지(種痘心法要旨)가 게재되어 있는 점을 주목한다.

그런데 어린 시절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하고 있던 사암에게 첫 시련이 다가 왔으니 모친 해남윤씨(海南尹氏)가 1770년(영조 46) 향년 4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 모친이 세상을 떠날 당시 사암의 연령이 9세에 불과하였는데 한마디로 어머니의 손길이 필요한 시기에 이러한 불행을 겪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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