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논단] 평양의 키는 김여정이 쥐고 있다
[통일논단] 평양의 키는 김여정이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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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또 다시 우리 특사단이 평양을 찾게 된다. 폼페이오의 4차 평양 방문이 좌절된 이 시점에서 우리 특사단의 사명은 남북정상회담 논의가 반이고, 북한 비핵화의 탈출구를 마련하는 몫이 반인 숙명적인 것으로 되고 있다. 이번 방북기간 중 우리 특사단은 북한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상대하게 될 것이다. 또 김정은 위원장의 진달래관 만찬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영철은 표면상 북한의 대외창구일 뿐 모든 결정은 김정은 위원장이 내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보다 중요한 인물이 있다. 바로 김여정 노동당 1부부장이다. 지난 김정은 위원장의 40일 북한 전역 현지지도 정치에 김여정은 단 한번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국내정치에서 완전히 벗어나 국제정치의 새로운 구상들을 짜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이제 평양을 움직이려면 김여정을 설득해야 한다는 명제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지난 5월 9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2차 방북 당시 조그만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폼페이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면담 도중 자료 하나를 김정은에게 건넸다. 내용은 극비. 김정은은 배석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에게 넘겼다. 해프닝은 접견이 끝난 뒤. 접견장을 나서는 순간 밖에 대기하고 있던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쏜살같이 달려왔다. 그러곤 김영철이 건네받은 자료를 낚아챘다. 접견장이 투명유리로 돼 있어 김여정이 내부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고 있었던 것이다. 김영철은 아무런 ‘반항’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을 것이다. 당시 상황은 미국 측 수행원 모두가 목격,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폼페이오의 4차 방북이 전격 취소되면서 워싱턴에선 한국·미국·중국을 들었다 놨다 하는 북한 외교의 중심에 김여정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보내고 있다. 지난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전후부터 김정은을 집중 분석한 결과 통이 크고 머리 회전이 빠른 건 인정하지만 표정 등으로 ‘읽히는’ 인물이란 내부 판단을 했다 한다. 협상 대표인 김영철은 거의 말이 안 통하는 독불장군이면서 김정은에게 전략·전술을 적극 제언하는 스타일도, 그럴 만한 위상도 아니란 평가다. 결국 김여정의 관여 아래 일련의 모든 각본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인데, 일본의 정보기관도 비슷한 분석을 내놓았다 한다. 문제는 미국으로선 꽉 막혀 있는, 김여정의 의도대로 돌아가고 있는 현 상황을 타개할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행정부 내 실무 관료들과 트럼프의 ‘이해의 격차’가 갈수록 심해지는 양상이다. 폼페이오 4차 방북 취소를 둘러싼 혼선이 그랬다. 8월 23일 “다음 주에 간다”고 발표해 놓곤 하루 만에 전격 취소했다. 북한으로부터 당일 ‘적대적’ 내용의 비밀 편지를 받았기 때문이란 보도도 있지만 편지 한 장에 방북을 취소하는 자체가 무원칙과 주먹구구식 대응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게다가 방북 취소를 공표하면서 “미·중 간 무역 문제가 해결된 뒤 폼페이오가 방북할 것”이라고 했다. 스스로 “북핵 문제는 미·중 무역 문제의 후순위”로 규정했다. 중국과의 무역 전쟁이 조기에 끝날 것이라 보는 이는 없다. 그런데도 굳이 중국 문제를 끌어들였다. 북핵 문제를 타결하려는 생각보다 11월 중간선거에 미·중 무역갈등을 부각해 ‘중국에 맞서 싸우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부각하는 쪽으로 튼 것이다. 그게 득표에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관료들은 ‘정책’에 맞춰 일을 진행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와 직감’에 따라 행동한다. 서로 따로 논다. 당분간 북·미 관계에 돌파구는 없어 보인다. 시진핑은 트럼프의 협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북·중 밀월 굳히기에 들어갈 것이다. 북핵 문제가 복잡한 고차방정식, 아니 트럼프 발 삼류 리얼리티쇼의 구도가 돼 버렸다. 우려했던 상황이 너무 빨리 왔다.

이런 와중에 우리만 일방적으로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기도 모호해졌다. 게다가 미국은 “‘북한의 1년 내 비핵화’는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것”이라며 그 약속을 전달한 한국에 노골적으로 책임을 돌리려는 판이다. 이럴 때는 ‘구체적 비핵화 조치 전까지는 강력한 제재 유지’라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게 옳다. 비핵화와 평화는 함께 가야 한다. 비핵화 없는 한반도 평화는 없다. ‘대북제재’ 위반 논란이 있는 남북연락사무소 개소를 서둘러 미국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키울 필요가 없다. 그러나 미국도 내부적 남북관계의 진도를 지나친 ‘과속’으로 결론짓고 가로막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철도 연결과 도로연결 등은 단순히 북한에 퍼주기가 아니라 북한 변화를 이끌어낼 파이프를 만드는 일이다. 북한을 정치적으로 유인하기보다 경제적으로 유인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번에 우리 특사단은 반드시 김여정을 붙잡고 북한이 지극히 정상적인 변화의 길을 갈 것을 촉구해야 한다. 그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면 북한 변화는 이미 화석화된 것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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