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천지일보

김동희 건축가
오래전만 해도 건축물의 뼈대가 콘크리트로 되어있다면 의례 단단하고 직선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크게 변함은 없지만 반대로 특별함을 주는 건축물에 대한 관심은 늘어나고 있다.

콘크리트 구조가 자유롭다는 생각은 일상적인 생각은 아니지만 건축가 오영욱의 ‘우연한 빌딩’은 자유롭다. 마치 자신의 그림을 그리듯이 건물이 서있다. 건축물이 더 이상 구조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생각을 따른다. 콘크리트가 가지는 기본적인 물성을 벗어났다고 착각할 정도로 자유로운 형태로 만들어졌다. 마치 비단을 몸에 두른 것처럼 풍성한 느낌을 만들었다.

건축가 자하 하디드는 자유로운 형태를 건축하는 건축가로 유명하다. 건축형태가 직선으로 지어질 것이라고 단 한 번도 기대해본 적이 없는 그런 건축을 했다. 

건축은 건축가를 투영한 결과라고 할까요? 직선의 모임이지만 어느 한 곳도 직각으로 만나지 않는다면 직선이 직선으로 보기 힘들다. 형태로 설명하기보다는 생각으로 읽힌다. 

그래서 직선은 직선이 아니고 생각이 된다. 앞서 언급한 두 건축가는 항상 자신의 건축과 같은 삶을 살아왔다. 당연하다. 건축가를 통해 건축은 평면을 평면으로만 읽히는 것이 아니고 공간으로 읽히고 문화로 읽히고 예술로 읽힐 수 있다. 그래서 예술이면서 기술이면서 다양한 또 다른 영역을 가진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추상적인 면이 더 강조된다. 점, 선, 면의 조합이 건축이 되는데, 점, 선, 면이 공간이 된다는 것은 실체가 없기 때문에 결과가 나올 때까지 믿음이 있어야 한다. 

선을 선으로만 인식하면 결과를 제대로 인식하기 힘들 수도 있다. 건축주와의 간극은 물리적으로 줄이기는 쉬운 일은 아니다. 많은 건축가들이 선을 고민하지만 공간화되는 과정에서 좌절을 하고 건축주는 선을 보고 별 볼 일 없다고 실망을 하기도 한다. 경제적 가치에 우선하다 보면 공간을 보기가 힘들고 건축적 가치기준에서 벗어나기 일쑤다.

모든 건축가의 작품이 훌륭할 수는 없지만 열정으로 무장된 건축가들의 결과물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건축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건축가 스스로 최면을 걸 수밖에 없다. 끝까지 믿어 주는 건축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