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9월 1일 일본 도쿄를 비롯한 관동지역에 진도 7.0이상의 대지진이 일어나자 흉흉해진 민심을 달래기 위해 일본은 조선인을 희생양으로 삼았고, 유언비어를 퍼트려 자경단 등이 처참하게 살해해 한곳에 모아놓은 모습. (제공: 정성길 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18.9.1
1923년 9월 1일 일본 도쿄를 비롯한 관동지역에 진도 7.0이상의 대지진이 일어나자 흉흉해진 민심을 달래기 위해 일본은 조선인을 희생양으로 삼았고, 유언비어를 퍼트려 자경단 등이 처참하게 살해해 한곳에 모아놓은 모습. (제공: 정성길 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18.9.1
1923년 9월 1일 일본 도쿄를 비롯한 관동지역에 진도 7.0이상의 대지진이 일어나자 흉흉해진 민심을 달래기 위해 일본은 조선인을 희생양으로 삼았고, 유언비어를 퍼트려 자경단 등이 처참하게 살해한 모습이다. (제공: 정성길 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18.9.1
1923년 9월 1일 일본 도쿄를 비롯한 관동지역에 진도 7.0이상의 대지진이 일어나자 흉흉해진 민심을 달래기 위해 일본은 조선인을 희생양으로 삼았고, 유언비어를 퍼트려 자경단 등이 처참하게 살해한 모습이다. (제공: 정성길 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18.9.1

관련사건 미공개 사진 단독 공개
“우리 선조의 원한 풀어드려야”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관동대지진(간토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사건 95주기를 맞아 관련 미공개 사진 4점을 공개한다.

1923년 9월 1일 도쿄, 요코하마를 중심으로 일본 관동 지역에 진도 7.0 이상의 초강력 지진이 발생해 폐허가 될 정도로 피해가 심각했다. 당시 지진은 일본의 경제가 좋지 않은 공황상태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민심의 추락은 상당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곧바로 계엄사령부를 설치하고 지진으로 인한 경제파탄으로 울분이 터진 민심을 달래기 위해 희생양을 조선인으로 돌렸다.

일본 계엄사령부는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 ‘조선인이 방화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 등으로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계엄사령부는 무전과 전단, 포스터 등을 뿌리고 다녀 관동 일대 조선인들이 숨을 곳이 없도록 조장하는 역할을 했고, 형무소에 수감 중인 죄수들까지 다 내보내 자경단을 구성하도록 해 대학살을 자행하도록 부추겼다. 이들에 의해 학살된 조선인은 6천여명(독립신문 발표)에서 많게는 2만 3000명 이상(독일 문헌 등)이다.

1923년 9월 1일 발생된 일본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안전한 지역으로 벗어나고자 열차타기 위해 혼란스러운 모습 (제공: 정성길 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18.9.1
1923년 9월 1일 발생된 일본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안전한 지역으로 벗어나고자 열차타기 위해 혼란스러운 모습 (제공: 정성길 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18.9.1
1923년 9월 1일 발생된 일본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열차 선로가 무너진 모습 (제공: 정성길 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18.9.1
1923년 9월 1일 발생된 일본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열차 선로가 무너진 모습 (제공: 정성길 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18.9.1

공개된 사진은 당시 지진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가늠하게 하며, 무고하게 처참히 학살된 모습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1948년 유엔총회에서는 제노사이드(genocide, 집단학살)에 관한 협약이 승인되고 인종·이념 등의 대립을 이유로 특정집단을 대량학살하는 행위를 범죄로 정의하는 국제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중국의 난징대학살과 나치에 의한 유태인 학살이 최초로 제노사이드 범죄로 적용됐다.

관동대지진 대학살 사건은 제노사이드로 인정돼야 할 중대한 사건임에도 아직까지 정부 차원의 움직임이 없다. 현재 일본은 계속해서 정부 차원에서 이 같은 역사적 사건을 자국 교과서 내용에서 수정·삭제 등으로 덮어가려고 하고 있다. 자신의 선조들이 당시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겼음에도 이를 무시하면서까지 왜곡하려는 것이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그럼 우리나라는 이 사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부끄러운 현실이지만 정작 우리는 국사 교과서에조차 거의 언급이 안 되고 있다. 또한 어떠한 정부차원의 규명작업 역시 없어 잊어져 가고만 있다. 지난 2014년 19대 국회 여야 의원 103명이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위원회’를 설치하는 특별법안을 발의했으나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명백한 증거가 이같이 있음에도 정치인이나 정부는 해결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일제시대 때 강제로 토지를 잃어 돈 없고 나라 잃은 설움 속에 일본으로 왔다가 억울하게 죽은 우리 선조들이다.

이 사진들은 당시 일본에 있던 외국인들이 충격적인 현장을 보고 카메라로 담았던 사진이다. 그럼에도 이 충격적인 장면들은 90년 가까이 흐를 동안 앨범 속에 평범하게 보관돼 있었고, 이를 정성길 사진연구가가 수소문 끝에 구하게 됐다. 그 덕분에 우리들은 후손으로서 일본의 당시 만행을 밝히고 처참하게 죽은 선조들의 억울함을 풀 수 있는 증거자료를 얻게 된 것이다. 정 연구가는 관동대지진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500여장의 사진을 책으로 묶은 ‘사진으로 본 관동대지진의 실체’를 최근 발간했다. 이 책은 온라인(옥션, G마켓, 11번가)에서만 판매되고 있다. 

정 연구가는 “우리나라 정부는 입증할 수 있는 근거와 증거자료가 있음에도 기억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한탄하면서 “올해는 관동대지진이 발생한 지 95주기가 되는 해다. 이제라도 일본의 조선인 대학살 사건이 명백한 제노사이드임을 밝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동포가, 우리의 선인들이 이유도 모르고 처참히 죽어가야 했던 그 원한을 이제라도 풀어드려야 한다”면서 “1세기가 가기 전에 이를 하지 못한다면 이 사건은 그대로 묻히게 된다. 일본이 조선인을 향해 저지른 그 만행을 속히 밝히고 제대로 된 사과를 받는 것이 지금을 사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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