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유린 기무사 대체 ‘안보지원사’ 창설… 초대 사령관에 남영신
헌정유린 기무사 대체 ‘안보지원사’ 창설… 초대 사령관에 남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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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신 기무사령관이 4일 오후 경기 과천 국군 기무사령부 청사에서 열린 기무사령부 사령관 취임식에서 경례를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남영신 기무사령관이 8월 4일 오후 경기 과천 국군 기무사령부 청사에서 열린 기무사령부 사령관 취임식에서 경례를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2018.09.01

기무사, 세월호유족사찰·계엄령문건 등 위법행위

문 대통령 “과거와 단절된 정보부대 창설” 지시

기무대장, 장관에 맞서며 하극상 상황 연출하기도

[천지일보=박정렬 기자] 온갖 위법행위로 헌정질서를 문란케 했다는 지적을 받은 기무사령부를 대신하는 군의 새로운 정보부대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1일 창설식과 함께 공식 임무에 들어갔다.

안보지원사 초대 사령관은 지난달 초 기무사령관으로 임명된 남영신 육군 중장이다. 남 사령관은 안보지원사 창설준비단장을 겸직해 새로운 군 정보부대의 창설을 지휘해왔다.

안보지원사 서열 2위인 참모장에는 전 공군본부 기무부대장 전제용 준장이 소장 진급과 함께 임명됐다. 전 참모장은 공사 36기로 임관해 방산 보안분야의 주요직위를 역임했으며 탁월한 정책 마인드와 전문성, 조직관리 역량을 구비해 남영신 사령관의 기무사 개혁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다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안보지원사 창설은 문재인 대통령이 “기무사의 전면적이고 신속한 개혁을 위해 기무사를 근본적으로 다시 해편해 과거와 역사적으로 단절된 새로운 사령부를 창설하라”고 지시하면서 추진됐다.

안보지원사 인원은 기존 기무사 부대원 4200여명에서 대폭 줄어든 2900여명이다. 이는 국방부 기무사 개혁위원회의 ‘인원 30% 이상 감축’ 권고에 따른 것으로 창설준비단은 현역 간부 중 750여명을 육·해·공군 원 소속부대로 돌려보냈다. 여기에는 계엄령 문건 작성과 세월호 민간인 사찰, 댓글공작 등 이른바 ‘3대 불법행위’에 연루된 240여명이 포함됐다.

장영달 국방부 기무사 개혁위원장이 2일 오후 기무사개혁위원회 전체회의를 마치고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개혁위에서 모인 의견 등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장영달 국방부 기무사 개혁위원장이 2일 오후 기무사개혁위원회 전체회의를 마치고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개혁위에서 모인 의견 등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지난달 23일에는 기무사 현역 중사가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기무사령부 장교 및 준, 부사관 원대복귀(8.24.) 추진 중단 요청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댓글 사건, 세월호 유족 동향 관찰, 계엄령 문건 등 일련의 불법적인 기무사의 행태에 많은 국민들과 가족들이 실망한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면서도 “이렇게 글을 쓰는 요지는 기회를 달라는 것이다. 수도 없는 인재이자 요원들이 이번 주 금요일(24일) 자신이 해고될까 두려움에 술로 밤을 지새우며 밤잠 설치고 있다”고 적었다.

기무사 계엄령 문건 사태는 결국 국방장관 교체까지 초래하고 만다. 계엄령 문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후 송영부 국방부 장관은 기무사 계엄령 문건을 지연 보고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에서는 기무사 소속 100 기무부대장인 민병삼 대령과 진실공방을 벌이면서 하극상으로 비쳐지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는 결국 송 장관의 리더십에 상처를 입혀 장관 교체로까지 이어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국군기무사령부 (출처: 연합뉴스)
국군기무사령부 (출처: 연합뉴스)
지난 8월 31일 오후 경기 과천시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정문에 창설을 앞둔 ‘군사안보지원사령부’의 마크가 설치돼있다. (출처: 뉴시스) 2018.09.01
지난 8월 31일 오후 경기 과천시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정문에 창설을 앞둔 ‘군사안보지원사령부’의 마크가 설치돼있다. (출처: 뉴시스) 2018.09.01

해체된 기무사의 전신은 보안사령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2.12 쿠데타를 일으킬 당시 보안사령관으로 있었다. 전두환 집권 이후에도 보안사는 야당 정치인, 재야 인사, 학생운동·노동운동계를 사찰하며 정권의 충견 노릇을 했다.

1990년 당시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해 결국 기무사령부로 이름을 바꿨지만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사이버 댓글을 달며 정치에 개입한 사실이 밝혀졌고 이후에도 세월호 유가족 사찰, 지난 촛불 정국에서는 계엄령 문건을 작성해 헌정 질서를 파괴하려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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