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 만나본 박물관] 우리문화유산 지킨 보물창고 ‘간송미술관’
[이달에 만나본 박물관] 우리문화유산 지킨 보물창고 ‘간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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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기록된다. 역사는 미래를 바라볼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남겨진 유물은 그 당시 상황을 말해 주며 후대에 전해진다. 이 같은 역사적 기록과 유물을 보관하고 대중에게 알리는 장소가 박물관이다. 이와 관련, ‘이달에 만나본 박물관’ 연재 기사를 통해 박물관이 담고 있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간송 전형필 선생 (제공: 간송미술문화재단) ※재배포 금지
간송 전형필 선생 (제공: 간송미술문화재단) ※재배포 금지

한글창제 원리 훈민정음 보호

일제 우리말 말살정책에 저항

민족교육 요람 보성학교 보존

독립정신 바탕 문화유산 수집

[천지일보=손성환 기자] K-POP 그룹 방탄소년단(BTS) 등으로 인해 외국인들의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달 초에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만난 미국인 로렌(Lauren)은 BTS의 노래가 좋아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고 지금은 한글에도 큰 관심을 갖고 배우고 있다고 했다. 로렌과 같은 이유로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은 광화문 광장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을 필수 관광지로 꼽고 있다. 로렌은 저 세종대왕이 들고 있는 책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훈민정음이라고 답했다. 그 책은 실제로 있는지 어디서 볼 수 있는지 로렌은 다시 물었다. 쉽게 대답해주지 못했다. 훈민정음 원본은 어디에 있지?

훈민정음 해례본 (제공: 간송미술문화재단) ※재배포 금지
훈민정음 해례본 (제공: 간송미술문화재단) ※재배포 금지

한글의 창제 목적과 원리가 담긴 훈민정음 해례본(원본)은 간송문화재단의 간송미술관에 보관돼 있다. 세종 28년(1446년)에 만들어진 훈민정음 해례본은 현재 국보 70호로 지정돼 있다. 한글이 어떤 이유로 창제됐고 어떤 원리로 이뤄졌는지 설명한 훈민정음이 없었다면 외세의 침략이 많았던 우리나라는 우리의 정신도 문화도 없이 방황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또 전 세계인이 관심을 갖고 있는 한글을 그들에게 설명해주지도 전파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와 관련,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이자 3대 사립 미술관 중 하나인 간송미술관(한국민족미술연구소)을 조명해 봤다. 간송미술관은 서울 성북구 성북로 102-11에 위치해 있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려서 버스로 환승해 성북초교 앞에서 내리면 된다.

간송미술문화재단(서울보성고등학교)은 서울 송파구 양재대로 1278에 위치해 있고 112년의 민족정신이 깃든 보성고등학교와 함께 있다. 미술관도 고등학교도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유이다.

간송미술관은 현재 공사 중이라 관람은 어려운 상태였다. 다만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소장품들을 특별전시하고 있었고, 대구에도 특별전을 열고 있었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소장품들은 국보급이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소장품 목록들을 대략 살펴보면 훈민정음 해례본뿐 아니라 우리나라 한자 표준음을 정립한 동국정운(세종 30년, 1448년, 국보 71호), 겸재 정선(1676~1759)의 금강내산(보물 1949호), 혜원 신윤복(1758~?)의 미인도(보물 1973호) 등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간송미술관에 가득했다.

간송미술관 전경 2014년도 모습(왼쪽)과 1938년도 모습 (제공: 간송미술문환재단) ※재배포 금지
간송미술관 전경 2014년도 모습(왼쪽)과 1938년도 모습 (제공: 간송미술문환재단) ※재배포 금지

간송(澗松)은 전형필(全鎣弼, 1906~1962) 선생의 호이다. 1910년 8월 22일 한일병합조약이 강제로 이뤄져 일본 제국주의 세력에 식민통치를 당하는 비운을 맞이했다. 일본은 문화적 낙후성으로 인한 열등감을 갖고 있던 터라 우리의 문화유산을 파괴하거나 마음대로 탈취하기 시작했다. 특히 국권 탈취의 원흉들은 고려청자나 신라불상, 조선시대 서화 등을 고분을 도굴하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해 도둑질하고 있었다. 간송은 3.1 독립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중 한 명인 오세창 선생을 만나 정통 고증학을 배웠다. 간송은 큰 상권을 가진 증조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바탕으로 민족문화유산들을 수집하기 시작하면서 일제에 빼앗기거나 훼손될 위기로부터 구해내기 시작했다.

일제에 의해 1938년 학교 교육 과목에서 조선어와 한문 과목이 폐지되고, 1940년 2월 11일에는 창씨개명(일본식 이름으로 바꾸라는 것)을 강요당하는 등 일본은 우리의 정신문화를 말살하려고 했다.

이때 간송 전형필 선생은 민족교육의 요람으로 고종의 칙지로 개교했던 보성고보가 경영난으로 폐교 직전에 놓인 것을 거금을 들여 인수했다. 이는 우리 민족을 노예로 삼기 위해 학교 교육을 차단하는 등 일본의 우민정책에 항거해 우리 민족에게 고등교육을 시키겠다는 목적을 갖고 이뤄진 일이었다.

간송미술관 보관 정선의 풍악내산총람(왼쪽), 신윤복의 미인도(가운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기획전시 모습 (제공: 간송미술문화재단) ※재배포 금지
간송미술관 보관 정선의 풍악내산총람(왼쪽), 신윤복의 미인도(가운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기획전시 모습 (제공: 간송미술문화재단) ※재배포 금지

같은 해 여름. 간송에게 또 다시 기회가 주어졌다. 간송은 7월 중순 오후 한남서림에 들렀다가 책거간으로 유명한 인사가 황급히 나가는 것을 보고 이유를 묻자 경상도 안동에서 훈민정음 원본이 출현했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 돈의 액수는 당시 돈으로 1천원. 큰 기와집 한 채를 얻을 수 있는 금액이다. 간송은 이 귀한 것을 1천원에 사들일 수 없어 1만원을 주고 확보했다.

2년 뒤인 1942년 10월 일제는 조선어학회 사건을 일으켜 우리말과 글을 말살하려고 한글학자들을 잡아들인다. 만약 이 때 훈민정음이 일본의 손에 들어갔다면 지금 한글의 역사를 왜곡하고 그 정신을 없앴을 수도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 후에도 간송은 유일본인 동국정운 등 희귀 서적을 계속 사들여 우리의 문화유산들을 보존할 수 있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고귀한 신분은 책임이 있다’라는 프랑스어이다. 일제강점기에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한 이들이 있는가 하면, 위험을 무릅쓰고 재산을 조금도 아끼지 않고 기꺼이 헌신한 이들도 있다.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알 수 있는 곳이 간송미술관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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