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미관계가 난항을 겪고 있다. 물론 비핵화 협상이 술술 풀릴 것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벌써부터 교착상태로 가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전쟁과 살상의 담론으로 얼룩졌던 지난해 초기와 비교하면 지금의 평화로운 분위기가 더 없이 소중하고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아직도 불안한 마음은 여전하다. 혹여 판이 깨지는 것은 아닌지, 그러다가 ‘양자 게임’의 최악의 수순을 밟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불안감이다.

이런 시점에서 청와대가 30일 다음 달 평양에서 열릴 남북정상회담의 의제가 비핵화 문제에 집중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이 돌연 취소된 이후 북미 관계가 다소 냉랭한 상황에서 나온 우리 정부의 발표여서 반갑게 느껴진다. 미국발 악재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기본적인 신뢰를 지켜가겠다는 뜻이다.

자존심을 걸고 무역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중관계, 주도권을 놓고 샅바싸움을 벌이고 있는 북미관계 그리고 그런 미국을 공동으로 견제하려는 북중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핵화 협상의 중재자로 나선 문재인 정부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비핵화 협상의 속도가 빨라질 것인지 아니면 결국 파국으로 몰릴 것인지에 대한 우리 정부의 역할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 역할의 관건은 결국 신뢰 관계에 달려 있다.

이날 청와대 브리핑에서 김의겸 대변인은 “비핵화 문제는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여부와 관계없이 남북정상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여서 이를 해결하려 논의를 집중한다는 데에는 변화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남북 정상이 합의했던 한반도 비핵화의 대원칙은 다른 변수에 영향을 받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힌 셈이다. 따라서 문 대통령의 방북 일정이 바뀔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북한을 향해 우리 정부의 신뢰를 확인시켜 주는 의미 있는 메시지로 읽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남북이 공동으로 경의선 철도의 북측 구간을 조사하려던 계획을 유엔군사령부가 승인하지 않은 것은 실로 유감이다. 단순히 통행계획에 대한 통보시한을 넘겼다는 이유인데 이를 그대로 믿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이 취소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전에 한미 양국이 좀 더 집중적으로 철도 문제를 협의 했어야 했다. 남북 정상이 합의하고 일정까지 확정된 사안이 실행 직전에 갑자기 미국의 입맛에 따라 차질을 빚는다면 결국 문재인 정부의 신뢰에 금이 가기 때문이다. 비핵화 중재의 길은 결코 만만한 길이 아니다. 그럼에도 어떤 경우든 기본적인 신뢰만큼은 절대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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